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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시아 / 부탄

산천초목 2017. 11. 27. 17:50

 


부탄   Bhutan

수도 : 팀푸

 

언어 : 종카어 영어

화폐 : 부탄 눌트럼(BTN, Nu)

면적 : 383만 9천㏊ 세계35위 (2019 국토교통부, FAO 기준)

인구 : 78만 7,944명 세계164위 (2022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

GDP : 24억 926만 달러 세계151위 (2020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

기후 : 부탄의 기후는 국토 규모에 비해 다양하게 나타나며 네팔과 마찬가지로

          지형 고도에 의해 기후가 결정된다.부탄의 대부분은 계절풍기후로 구별할 수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상층부에는 고산 툰드라지역이 나타나고,

          인도 접경의 저지인 두아르 평원은 덥고 습한 아열대기후가 나타나며,

          저지 히말라야 지역은 그보다 시원한 온대성 기후가 나타난다.

          강수량은 북부 고산지대에는 연간 40mm로 거의 없는 곳이 있는 반면,

          중부 온대기후 지역에서는 연간 1,000mm정도가 일반적이다.

          일부 고도 및 지형조건에 따라 연간 최대 7,800mm의 강수량을 보이는 지역도 있다.

          서부 지역에 위치한 팀푸는 온난한 저지 히말라야를 대표할 수 있는 기후지역이 될 수 있다.

          팀푸의 가장 추운 달인 7월 평균기온은 21.8℃이며, 최고기온은 33℃를 넘지 않는다.

          가장 추운 달은 1월의 평균기온은 6.3℃, 최저기온은 –8.5℃ 정도를 보인다.

          강수량은 연간 약 609mm이며, 6~9월에 집중된 편이다

 

종교 : 대승불교(라마교)75% 힌두교, 이슬람교.

 

국기
 
 
 
 
 

 

부탄의 역사    

수 천년 전부터 네팔 산지의 협곡에 인간이 거주했다는 고고학적 근거는 있다. 부탄인들은 현재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는

로푸(Lhopu)족이 부탄 남서쪽에 거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푸족은 혈통상으로 티베트몽골에서 도래하였으며,

언어는 티베트-버마어 계통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수종족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부와 서부 계곡에 거주한

응갈롭(Ngalop)족이 대부분이다.

구루 림포체(Guru Rimpoche) 또는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가 서기 659년 경 부탄의 파로와 붐탕에

탄타르 불교를 도입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600년 초기까지 부탄은 각 라마(lama)들과 군 지도자들에 의한 분열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티베트에서 이주한 군인들이 띰부 계곡으로 들어가 군권을 동원해 국가를 세웠다. 이때 세워진 국가들은 '제 켐포(Je Khempo)'라는 영적 지도자와

'데시 드럭(Desi Druk)'이라는 행정지도자로 양분되어 통치되었고, 현재까지 이러한 관습이 전해진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는 등장하지 않았고 1885년까지 분열된 상태가 이어졌다.

1700년대 초 부탄은 남쪽 소국을 침략하여 왕국의 영향권 하에 두었는데, 1772년 전쟁에 패배한 남쪽 소국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부탄의 압력을 소멸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1774년 부탄과 영국은 1730년대 이전

전쟁이 발발하기 전 상황으로 되돌리는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몇 차례 국경전쟁을 통해 부탄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1870~1880년에는 파로와 쩡사 계곡 간의 내전이 발생했다. 1885년 쩡사 계곡의 통치자가 승리함으로써 모든 권력을 장악했지만 이는 영국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1907년 12월 17일 영국의 영향아래에서 부탄은 왕추크(Ugyen Wangchuck)를 국왕으로 하는 군주제를 채택하게 된다.

3년 후 부탄은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는 조약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득세하였고,

1931년 인도의 간디가 반대세력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1969년부터 시작된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대는 높아져 3대 왕인 지그미 도지 왕추크(Jigme Dorji Wangchuck)가 사망한 1972년에
들어서야 국회에서 왕의 절대적 권한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기 시작했다. 4대 왕에 들어서도

왕의 권한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심해졌고, 1998년 공식적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졌다.

2005년 12월 지그미 싱예 왕추크(Jigme Singye Wangchuck)왕은 2008년부터군주제를 채택할 것이며,

신헌법과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그는 이러한 약속을 번복하고 왕권을

그의 아들이 지그미 케사 남젤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에게 이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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