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Romania
수도 : 부쿠레슈티
언어 :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독일어
면적 : 238,391㎢ 세계83위 (CIA 기준)
인구 : 약 21,529,967명 세계51위 (2017.07. est. CIA 기준)
GDP : 2,049억$ 세계49위 (2017 IMF 기준)
기후 : 대륙기후로서 흑해 연안과 평야부의 평균기온은 11℃ 산지의 평균기온은 4℃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600∼700mm이다. 식생은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며,
삼림은 해발고도 300m 이상의 구릉 산지를 덮고 있으며, 떡갈나무·너도밤나무·전나무·
자작나무 등이 생육하고 1,800m 이상은 하계의 목초지로서 이용되고 있다.
많은 하천·호소(湖沼), 특히 도나우강은 어류의 보고로서 송어·잉어·철갑상어 등의
어업자원이 풍부하다. 산지에는 사슴·여우·산돼지가 서식하며,
고지에는 알프스 영양이 살고 있다.
종교 : 루마니아정교87%,카톨릭 5%,개신교35%
루마니아의 역사 기원 전 카르파티아산맥 남부에서 도나우강에 이르는 지역, 즉 오늘날의 루마니아 국토에 살고 있던 다치아(dacia)인은 기원 전 1세기경에 트란실바니아·왈라키아·몰다비아를 통일하여 강대한 노예제국인 다치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도나우강 유역을 점령하려는 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여오다가 106년 트라야누스 황제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다치아인은 약 1세기 반에 걸친 로마 속주(屬州)의 시대를 겪게 되는데, 6세기 무렵 슬라브인이 북쪽에서 발칸반도로 진출해오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오늘날의 루마니아인 조상인 다치아계(系) 로마인(人), 즉 루마니아인과 라틴속어(俗語)로 부터 발전한 루마니아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에서 14세기 무렵까지 루마니아인은 역사의 표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동안 슬라브족과 동화·혼혈되면서도 루마니아어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인의 무대가 된 트란실바니아는 13세기 무렵에 헝가리 왕조에 의해 정복되어,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 헝가리 및 오스트리아의 정치적·문화적 지배를 받았다.
14세기에 카르파티아산맥의 동쪽 및 남쪽에 루마니아인의 봉건국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성립되었으나, 발칸으로 진출한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군사력에 눌려서, 19세기 후반까지 그들의 간접지배를 받으면서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동안 반(反)투르크 투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나, 17∼18세기에는 투르크가 임명하는 파나리오트(Phanariots:그리스인 고관)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어 그동안 농민들의 궁핍이 극에 달하였다.
18세기부터 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가 완만하게나마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또 19세기에 들어와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도 지식인들 사이에 보급되었다. 그리하여 1848∼1849년에는 전 유럽의 혁명운동의 영향을 받아, 몰다비아·왈라키아 양 공국에서 선진적인 시민층과 지식인이 주동이 되어 투르크로부터의 독립, 농노해방, 의회제도의 창설 등을 요구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혁명은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양 공국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게 된 러시아의 무력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크림전쟁의 결과 체결된 파리조약(1856)에 의해 러시아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는 1859년 쿠자(Alexandru Ioan Cuza)를 양 공국 공동의 군주로 선출함으로써 민족통일을 성취하였다. 쿠자는 국가의 근대화를 위한 민주주의적인 개혁에 착수하여 진보적인 농업·교육 입법을 실시하고, 농노해방을 실현하였으나 국내 반동세력의 반대에 부딪쳐서 1866년 퇴위를 강요당하고 말았다. 대신 독일의 호엔촐레른가(家)의 카롤 1세가 세습군주로 루마니아공(公)에 추대되어, 1947년 군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그 왕통이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