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여행

유럽 /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산천초목 2017. 10. 11. 13:02

 

크로아티아  Croatia

수도 : 자그레브

언어 : 크로아티아어

화폐 : 크로아티아 쿠나(HRK)

면적 : 880만 7,300 ha 세계114위 (2019 국토교통부, FAO 기준)

인구 : 405만 9,285세계129위 (2022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

GDP : 559억 6,658만 달러세계47위 (2020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

기후 : 전체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나 대체로 온건한 기후가 나타난다.

          아드리아 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이 따뜻하며 여름이 건조한 특징을 지닌다.

          크로아티아 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최대의 무역항인 리예카의 1월 평균기온은 5.3℃이다.

          디나르알프스산맥에서 동부 지방 사이는 온난습윤기후와 서안해안성 기후이나

          겨울의 추위는 심한 편이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도 있다.

          크로아티아에는 37,000여 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종들을 포함하면 50,000에서 100,000여 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000여 종이 넘는 크로아티아 고유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지하자원으로는 석탄·갈탄·석유·천연가스·보크사이트·

          철광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공업화에 따른 산성비에 의한 삼림 황폐와 연안 해역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종교 : 카톨릭 86.3%, 세르비아정교 4.4% 이슬람교

 

 

크로아티아 역사 : 크로아티아의 선주민은 일루리아족으로 기원전 3세기에 해안지방에서는 로마와 접촉을 가졌고 내륙지방에서는 켈트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에 고트족, 5세기 전반에 훈족의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6세기에는 북쪽에서 슬라브인과 아바르인이 들어왔고, 7세기에는 슬라브인이 대량으로 이주하여 왔으나 당시 이들에 의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9세기에 들어와 슬라브라는 이름과 함께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7~9세기에 북부는 프랑크왕국, 동부는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925년 크로아티아의 트미슬라브공()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 왕국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02년 헝가리왕을 통치자로 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1202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크로아티아의 해안산지인 달마티아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남()헝가리의 모하치전투에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연합군이 투르크군에게 패하였다.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헝가리의 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186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자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에서 벗어나 1918년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일명 베오그라드 왕국, 1929년 이후는 유고슬라비아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과 구소련의 해체로 인하여 1990년 4월 크로아티아 공화국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공산당이 퇴진하고 비공산 민족주의 정권이 탄생하였다.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하려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연방 최대인 세르비아 공화국과 민족적으로 강하게 대립하였고, 특히 경제적으로 농업 중심의 남부 각 공화국에 대한 경제부담이 커 불만이 쌓여왔다. 1991년 5월 주민투표에서 ‘주권국가에 의한 국가연합’에 대한 찬성이 94%에 달해 1991년 6월 독립선언을 하였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연방 유지를 지향하는 세르비아 공화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맞서 연방 이탈에 반대하는 세르비아와 전쟁상태에 돌입하였고, 국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따로 ‘크라이너’라는 공화국을 수립하여 크로아티아측과 맞섰다.

같은 해 6월에는 연방군대가 크로아티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에 돌입하였고 9월에는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에 대공세를 가하였다. 12월에 세르비아인의 크라이너 자치구가 크로아티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역시 12월에 독일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1월 EU도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UN은 3월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 지구인 동 ·서슬라보니아와 크라이너 세 지구에 30개국 1만 4000명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정전 감시활동을 전개하였다. 크로아티아는 5월에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UN에 가입하였다. 1993년 1월에는 크로아티아군이 정전을 파기하고 크라이너를 침공하여 발발한 내전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994년 1월 신유고연방측과 관계정상화 협정에 조인하고, 같은 해 3월 크라이너 지역 세르비아계와 휴전 협정에 서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 / 노르웨이 - 피오르  (0) 2017.10.11
유럽 / 이탈리아 - 베네치아  (0) 2017.10.11
유럽 / 포르투칼  (0) 2017.10.10
유럽 / 프랑스 남부  (0) 2017.10.10
유럽 / 그리스- 산토리니섬  (0)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