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흘러간 옛노래

청춘등대 / 손인호

산천초목 2016. 6. 24. 13:55

 

청춘등대        - 손인호 -

 

파도치는 등대아래 이밤도 둘이만나
바람에 검은머리 휘날리면서
하모니카 내가불고 그대는 노래불러
항구에서 맺은사랑 등대불 그림자에
아 ~ ~ ~ ~ 정은 깊어 가더라

깜빡이는 등대불에 항구를 찾아드는
타국선 고동소리 들리어 오네
손을잡고 안개속을 그대와 걸어갈때
등대에서 놀던사랑 영원히 잊지못해
아 ~ ~ ~ ~ 정은 깊어 가더라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으로,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만주국 신징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으며,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을 했고, 한국 전쟁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 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꽃일기> <남원땅에 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했고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영화 녹음 기사 시절에는 나화랑의 <함경도 사나이>가 최초의 취입곡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2013년까지 계속 가요무대에 출연했다(서울 종로구 명륜1가에서 20년 거주 이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선릉부근에서 40년 살다 별세.). 이후 노환에 따른 간경화로 투병해 오다가 2016년 7월 16일 새벽 6시 40분경 상태가 나빠져

향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으며, 7월 20일 경기도 통일동산 부근 동화 경모공원(이북5도민 묘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