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흘러간 옛노래

울어라 은방울, 연락선은 떠난다 / 장세정

산천초목 2015. 2. 2. 19:18

 

울어라 은방울    - 장세정 -

 

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누구를 실고가는 서울 거리냐
울어라 은방울아 세종로가 여기다
삼각산 돌아보니 별들이 떳네

 

자유의 종이 울어  팔일오는 왔건만
독립의 종소리는 언제 우느냐 
멈춰라 역마차야 보신각이 여기다
포장을 들고보니 종은 잠자네 

 

연보라 코스모스 양가슴에 안고서

누구를 찾아가는 서울 색시냐

달려라 푸른말아 덕수궁이 여기다

채찍을 휘두르니 하늘이 도네

 

 

연락선은 떠난다   - 장세정 -

 

쌍고동 울어 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가소 잘있소 눈물 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삼키면서

떠나갑니다 울지를 말아요

 

파도는 출렁 출렁 연락선은 떠난다

정든님 껴안고 목을 놓아 웁니다

오로지 그대만을 오로지 그대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한숨을 삼키면서

떠나갑니다 울지를 말아요

 

바람은 살랑 살랑 갈메기도 우는데

뱃머리 꾸짖는 안타까운 조각달

오로지 임자만을 오로지 임자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끝없이 지향없이

떠나갑니다 울지를 말아요

 

                                  

역마차 / 장세정

출생1921년 5월 28일       사망2003년 2월 17일

1921∼2003. 193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대중가요 가수.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 기념 공연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후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의 간판급 가수로 부상했다. 광복 이후에도 1950년대 초까지 악극 무대에 계속 서는 한편 「울어라 은방울」, 「샌프란시스코」 등 대표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 갔다. 1970년대 초까지도 공연과 방송을 통해 꾸준히 활동했다.

192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악기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오케레코드 운영자 이철에게 발탁되어 가수가 되었다. 1937년에 정식으로 데뷔한 이후 오케레코드에서 이난영에 버금가는 인기 가수가 되었고, 이철의 연인이 되어 아들 둘을 낳기도 했다. 이철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오케레코드 관련 공연단체인 조선악극단의 프리마돈마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나, 1944년 이철이 병사한 뒤 한동안 홀로 지내다가 연주가 한두식과 결혼했다. 1960년대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해 여러 차례 일본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1973년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투병하다가 2003년에 타계했다. 

데뷔 당시에는 청순한 음색과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으나, 1940년 일본에 일시 체류하며 성악 발성을 익힌 뒤로는 세미클래식풍 창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그를 바탕으로 1940년대 악극 무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되었고, 음반을 통해서도 「백팔염주」(1949년) 같은 독특한 작품을 발표했다. 김백희ㆍ심연옥ㆍ백설희 등 조선악극단 출신 후배 가수들의 전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작사가 조명암의 원가사 2절에 "독립의 종소리는 언제 우느냐" 등의 가사 내용이 문제되어 제제를 받자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조명암이 월북하고 작곡가 김해송이 한국전쟁 중에 납북 당하자 이 노래의 질곡의 역사도

시작된다. 가사는 반야월이 개사하고 작곡가는 이봉룡으로 수정되어 재취입하여 다시 큰 인기를 얻지만.

결국 월북작가 문제로 1992년 월북작가 작품이 해금될 때까지 금지곡으로 되어 있었다.

 

 

 

'흘러간 옛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속- 그리운 사람끼리 / 뚜아에무아  (0) 2015.04.21
처녀총각 / 강홍식  (0) 2015.02.03
안개낀고속도로 / 강정화  (0) 2014.11.28
60년대 가요 모음곡  (0) 2014.08.24
전화통신 / 남백송&심연옥  (0) 201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