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필화접도(金弘道筆花蝶圖) (김홍도필화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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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필사궁(金弘道筆射弓) (김홍도필활쏘기)
김홍도필노상파안(金弘道筆路上破顔) (김홍도필노상파안
김홍도필주막(金弘道筆酒幕) (김홍도필주막)
김홍도필심관(金弘道筆審觀) (김홍도필서화감상
김홍도필신행(金弘道筆新行) (김홍도필신행길
김홍도필선인야적(金弘道筆仙人夜笛) (김홍도필선인야적
상세설명 | ||||
산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인물이 비교적 크게 부각된《선인야적(仙人夜笛)》은 오른쪽 상단을 비운 변각 구도이다. 세선(細線)으로 윤곽선을 긋고 그 아래 담청(淡靑)을 입혔다.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태점(苔點)과 짧은 직선을 거듭 그어 양감을 낸 바위는 좌측 상단에 무게 중심을 준다. 마치 이 무게를 줄이려는 듯 인물의 표현은 완만하고 고른 필선을 사용해 30대에 그린 신선들과는 차이를 느끼게 한다. 옷에 담청이 칠해져 있으나 옅어서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며, 앞으로 넘어질 듯 가파르게 반가부좌를 한 선인의 자세는 바위 아래에 제법 잔가지가 많은 나무를 그려 넣음으로써 보완하고 있다. 나뭇가지 끝에는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 봄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제발(題跋)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얼굴 표현에 있어 도드라진 부분은 마치 햇볕에 반사되어 희게 보이듯 가채(加彩)하였고, 목이나 얼굴 옆부분의 살색은 그의 신선도에서 공통적으로 살필 수 있는 채색법이기도 하다. 약초를 캐러 산에 올라갔다가 잠깐 쉬는 듯한 모습으로 끈이 있는 바구니에는 영지(靈芝)가 보인다. 굳이 어떤 신선을 의식해서 그렸다기보다는 많은 도석 인물화를 누차 그리던 중에 자연스레 붓끝에서 나오는 선인(仙人)을 사경산수(寫景山水)를 배경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김홍도필선인취소도(金弘道筆仙人吹簫圖) (김홍도필선인취소도)
상세설명 | ||||
김홍도(金弘道. 1745-?)는 화원(畵院)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이며, 연풍 현감을 지냈다. 산수는 물론 인물, 풍속, 영모(翎毛), 화조(花鳥) 등 모든 화재에 능했으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전혀 배경이 없이 생황(笙簧)을 불고 있는 선동(仙童)의 모습은 그 자세가 《선동취생도》과 비슷하고 필치도 같아서 김홍도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허리를 조금 구부린 형태일 뿐 옷 모습과 등에 멘 호로병까지 동일하여 남본(藍本)으로 여럿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또한 여러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의 한 폭으로도 추정된다. 인물 표현에 있어 의습(衣褶)의 유연한 필선은 난엽준(欄葉준)이며 바람에 나부끼는 형태를 몇 개의 단순한 선묘(線描)로 성공적으로 나타냈다. 설채(設彩)도 담채(淡彩) 위주이며, 호로병, 짚신의 앞 부분, 생황 부분, 입술 등의 붉은색이 돋보인다. |
김홍도필선동취생도(金弘道筆仙童吹笙圖) (김홍도필선동취생도)
상세설명 | ||||
화면에 배경없이 피리부는 선동(仙童)을 그렸다. 오른쪽 상단에 '사능사(士能寫)'라 묵서하였고, 백문방인 '홍도(弘道)', 주문방인 '사능(士能)' 2과(顆)가 찍혀 있다. 선동의 자세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 1009 8폭병풍 <신선도> 중 선동취적도와 똑같으나 사슴은 생략하였다. 색깔은 선명하나 덕수 1009보다 다채롭고 고아한 맛이 없으며 얼굴 및 세부에 있어 섬세함이 떨어진다. |
김홍도필즙와(金弘道筆葺瓦) (김홍도필기와이기)
김홍도필단야(金弘道筆鍛冶) (김홍도필대장간)
김홍도필표모(金弘道筆漂母) (김홍도필빨래터)
김홍도필편석(金弘道筆編席) (김홍도필자리짜기)
김홍도필하지장도(金弘道筆賀知章圖) (김홍도필하지장도)
상세설명 | ||||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화원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 등이며, 벼슬은 연풍현감을 지냈다. 산수는 물론 풍속, 영모, 화조, 도석인물 등 모든 화재에 능했으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어려서 강세황(姜世晃)에게 그림을 배웠다 하며, 조선 말기까지 여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장기마(知章騎馬)》는 문기가 있는 서화(書畵)가 일치된 작품으로, 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편화로 생각된다. 배경을 도외시하고 마치 이즈음의 삽화와 같이 갈필(渴筆)로 간략히 나타낸 것으로 여기화가(餘技畵家)의 묵희(墨戱)같아 보이기도 한다. 간기(干紀)가 좌측에 있는데 '갑자랍념단구사우서묵재(甲子臘念丹邱寫于瑞墨齋)'로서 1804년 동지 후 12월 20일 서묵재(瑞墨齋)에서 그렸다는 것이다. 주문방인(朱文方印) '홍도(弘道)'에 이어 백문방인(白文方印) '취화사(醉畵士)'가 있다. '지장은 말 타기를 배 타듯 한다. 취중 몽롱하여 우물 가운데 떨어져 잠드네'(知章騎馬似乘船眼花落井水底眠). 이 시는 두자미(杜子美)의 음중팔선(飮中八仙)의 첫 구절이다. 김홍도는 당시(唐詩)에 심취하여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와 화면에 나타냈다. 옅은 홍색으로 인물의 이목구비를 나타냈는데, 이 등장 인물들은 흔히 그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다. |
전김홍도필화조도(傳金弘道筆花鳥圖) (전김홍도필화조도)
상세설명 | ||||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는 화원(畵院)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 등이다. 화면 상단에 주제인 매조(梅鳥)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엇비슷이 드리워졌고, 하단에는 물가의 정경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막 핀 매화와 새들의 지저귐에서도 언뜻 초봄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밑의 잔잔한 물가에서 송사리가 노닐고 있지만 아직은 춘수(春水)가 넘쳐 흐르지는 않고 있어서 계절의 운치를 절묘하게 나타냈음을 볼 수 있다. 엇비슷이 뻗어 내린 매화 가지와 그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도 초봄의 생기를 일깨우는 듯싶고, 그 밑 봄 물가의 차분한 표정이 단원이 나타내고자 한 계절감일 것이다. 필법(筆法)은 전부 몰골(沒骨)로 먹의 농담을 적절하고 능숙하게 구사하여 강하고 약하고 잔잔한 운치를 나타냈다. 흰 매화꽃과 거기 몇 점 찍힌 다홍, 담갈색의 새깃에서 생동하는 초봄의 기운을 보게 된다. 단원 김홍도의 화풍이 독창적인 전형을 이룩한 시기는 대체로 40대 말, 50대 초로 생각되는데, 이 그림은 이 때를 넘어서 좀더 노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대체로 50대 후반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
전김홍도필선객도(傳金弘道筆仙客圖) (전김홍도필선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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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는 화원(畵院)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또는 서호(西湖) 등이며, 산수는 물론 인물, 풍속, 영모, 화조 등 모든 소재에 능했으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수로인도(壽老人圖)를 좀더 확대해서 그린 것이 삼성도(三星圖)이다. 장수뿐만 아니라 복(福)이 많아야 하고 여기에 녹(祿), 즉 관직까지도 겸비하면 최상의 행운일 것이다. 이 그림은 복, 녹, 수성을 오른쪽으로 휘어지게 배치하고, 각자의 동자(童子)를 반대편으로 휘어지게 그려 이른바 'L'자 꼴로 이루게 했으며, 삼성(三星)과 삼동자(三童子)를 각각 대칭되게 배치하는 구도의 묘를 보여주고 있다. 복성(福星)과 동자는 가장 위에서 나란히 수성이 들고 있는 복숭아를 내려다 보고 있으며, 녹성(祿星)과 동자 역시 이들 바로 아래쪽에서 나란히 서서 복숭아를 응시하고 있는데, 시선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수성과 동자는 아래쪽에서 수성이 들고 있는 복숭아를 올려다 보고 있는데, 말하자면 이 화면의 중심이자 악센트는 바로 복숭아인 셈이다. 이 복숭아는 동방삭(東方朔)의 복숭아로도 생각되지만 수성(壽星)의 상징인 천도(天桃) 복숭아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며, 수성의 속성인 무궁한 수명을 보장해 주는 핵심으로 이제 삼성도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
이명기(李命基)ㆍ김홍도필서직수초상(金弘道筆徐直修肖像) (이명기ㆍ김홍도필서직수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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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사대부 초상들은 대략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장(正裝) 관복본의 공신도상(功臣圖像) 형식을 취한 위엄 있는 상이며, 또 하나는 동파관(東坡冠)이나 정자관(程子冠) 혹은 복건(幅巾)본에 심의(深衣)나 학창의(鶴창衣)를 입은 야복본(野服本)으로서 유풍(儒風)이 감도는 작품이다. 이 《서직수상(徐直修像)》은 후자에 속하는 사대부상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나라 초상화에서는 드문 전신입상(全身立像)이다. 화폭 우측 상단의 찬문(贊文)을 보면, 당시 어용 화사로서 이름을 떨쳤던 화산관 김명기(華山館 李命基)가 안면을 그리고,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가 몸체를 그린 합작임을 알 수 있다. 동파관에 주의(周衣)를 입고 흑색 세조대(細條帶)를 두르고 실내에 서 있는 이 초상화는 얼굴과 몸체간의 비례가 균형 잡혀 있을 뿐더러, 얼굴 모습도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뜬 듯한 모습에서 다부진 선비의 품격을 읽을 수 있다. 안면 처리에 있어서는 18세기 말엽의 필법을 여실히 살필 수 있다. 즉 수많은 붓질의 가감에 의해 얼굴의 도드라진 부분과 오목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옷주름 처리에 있어서도 주름으로 인해 굴곡진 부위에는 옷의 색깔보다 약간 짙은 선염(渲染)을 삽입하는 후기의 초상화법이 적용되어 있다. |
전김홍도필해동명산도(傳金弘道筆海東名山圖) (전김홍도필해동명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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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본(草本)"은 정식으로 작품을 그리기전에 그리는 밑그림으로서 대개 먹만을 사용하여 제작된다. 초상화(肖像畵), 불화(佛畵)의 초본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 작품처럼 산수화의 초본으로써 32면이나 되는 완성도 높은 것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표지에 "해동명산도(海東名山圖)"라 묵서 되어 있는데, 경포대로 시작하여 낙산사, 청간정, 삼일포, 해금강, 만물초, 총석정 등 금강산의 절경 32군데를 고루 담고 있으며 피금정으로 마감하고 있다. 화면내에는 지명(地名)과 실사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를 묵서하였는데 마지막 화면인 피금정에 "육십종(六十終)"이라 묵서되어 원래는 60면으로 이루어진 화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해동명산도>는 김홍도필 <금강사군첩>과 구성, 필치가 똑같아서 이 초본이 김홍도필<금강사군첩>과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산도 초본>을 보면, 나무를 그렸다가 고친 흔적, 색채의 농도와 종류를 기록한 "심청(深靑), 수묵색(水墨色)"등의 묵서, 나뭇잎군의 대체적인 윤곽을 설정하고 그 일부에 세부적인 표현을 그린 점은 초본으로서의 기능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본의 면모는 조선시대 회화의 제작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홍도필풍속화첩(金弘道筆風俗畵帖) (김홍도필풍속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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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풍속도하면 바로 이 화첩에 속한〈씨름〉〈무용〉 〈서당〉이 연상되리 만큼 지금까지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화첩은 1918년 조한준(趙漢俊)에게서 구입했고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년(年) 원 화첩의 수미(首尾)에 위치한 〈군선도(群仙圖)〉2점은 별도의 족자로 만들고 풍속도 25점만 새롭게 화첩으로 꾸몄다. 이 화첩에 속한 그림 중 4점이 1934년(年) 간행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게재되었다. 1970년(年) 〈군선도(群仙圖)〉를 제외한 이 화첩은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이란 명칭으로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이 화첩의 게제순은 1)서당, 2) 논갈이, 3) 활쏘기 4) 씨름, 5) 행상, 6) 무동, 7) 기와이기, 8) 대장간, 9) 노상과안, 10) 점괘, 11) 나룻배, 12) 주막, 13) 고누놀이, 14) 빨래터, 15) 우물가, 16) 담배썰기, 17) 자리짜기, 18) 벼타작, 19) 그림감상, 20) 길쌈, 21) 편자박기, 22) 고기잡이, 23) 산행, 24) 점심, 25) 장터길이다. 이들 작품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각계층의 생업장면과 놀이 등 생활의 이모저모가 잘 나타나 있다. 예외도 없지않으나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만으로 적절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평범한 일상사이나 화가의 따뜻한 시선과 예리한 시각에 의한 순간의 포착은 이를 볼거리로 부각시켜 그림이 그려진 사회분위기를 잘 전한다. 이 화첩에 속한 그림 중 〈점괘〉는 〈시주〉로, 〈고두놀이〉는 〈윷놀이〉로 보기도 한다. 또한 이 화첩에 대한 이와 유사한 그림들이 적지 않게 전해지는 사실, 그림사이에 기량과 격조에서 차이를 보이는점,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표현의 미숙함, 보수와 가필(加筆) 등의 요인으로 이 화첩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
김홍도필도선(金弘道筆渡船) (김홍도필나룻배)
김홍도필(金弘道筆)고누놀이 (김홍도필고누놀이)
김홍도필(金弘道筆)담배썰기 (김홍도필담배썰기)
김홍도필타작(金弘道筆打作) (김홍도필벼타작)
김홍도필제철(金弘道筆蹄鐵) (김홍도필편자박기)
김홍도필어장(金弘道筆漁場) (김홍도필고기잡이)
김홍도필(金弘道筆)점심 (김홍도필점심)
김홍도필(金弘道筆)장터길 (김홍도필장터길)
김홍도필무동(金弘道筆舞童) (김홍도필무동)
필자미상강세황초상(筆者未詳姜世晃肖像) (필자미상강세황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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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1713-1791)은 18세기 서울의 예단의 총수로서, 소위 태서화법으로 불리는 서양화법을 중국에서 배워 소개한 개척자이다. 뛰어난 글씨와 그림을 남긴 서화가로서, 좋은 글을 남긴 문장가로서, 한성판윤을 지낸 관리로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강세황의 초상화는 모두 8점이 전해지고 있다. 강세황 초상화의 특징은 얼굴의 분명한 육리문(肉理紋), 음영법을 쓴 입체묘사, 명암법으로 처리된 옷주름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 작품도 그러하다. 이 작품은 극사실 기법에 의한 정면 관복상이다. |
김홍도필점괘(金弘道筆占卦) (김홍도필점괘)
김홍도필정변(金弘道筆井邊) (김홍도필우물가)
김홍도필직조(金弘道筆織造) (김홍도필길쌈)
김홍도필상박(金弘道筆相撲) (김홍도필씨름)
김홍도필서당(金弘道筆書堂) (김홍도필글방)
김홍도필행상(金弘道筆行商) (김홍도필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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