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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미술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산천초목 2008. 11. 25. 15:26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헌종 9)~1897(광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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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산수도(楓林山水圖)> 자본담채, 40x211.5cm, 서울대박물관
 
장승업의 산수화 중 가장 이른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는 횡권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액자로 표구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물든 숲과 이를 감상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화면 오른쪽 끝에 동자가 미는 수레를 탄 고사(高士)가 그려져 있으며,
화면의 나머지 대부분은 숲과 산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풍의 인물표현이나 호분(胡粉)을 바른 동자의 얼굴 모습, 그
리고 수지법(樹枝法) 등 일부에서 장승업의 특징적인 면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초기적인 양상이 드러나 있다.
 
 
즉 세부 필치에서 특유의 호방함이 전혀 보이지 않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되어 있는 점,
다양하기는 하나 다소 부조화된 나무들의 형태,
 
화면 중앙과 좌측 아래의 숲의 비례상 부조화 등에서 화보식(畵譜式) 남종산수화풍을 조심스럽게 익혀나가는 초기 습작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면 왼쪽 끝 아래에 '장승업인(張承業印)'이란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있다.

 


귀거래도 [歸去來圖] 


장승업의 〈귀거래도〉는 중국 진(晉)나라 때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장승업 그림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위아래로 긴 화면에 전경에서 원경으로 급격하게 포개지듯 이어진 구도이다.
열린 사립문에는 병아리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담벼락에는
수탉이 올라앉아 홰를 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의 모양은 황공망이 그리는 법과 비슷하나,
세부 하나하나의 묘사가 좀더 치밀하다.
또한 바람에 나부끼는 가지의 표현 등에서
장승업의 활달한 필력을 느끼게 한다.

경물[景物]의 연속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바람에나부끼는 나뭇가지의 표현에서 오원의 활달한 멋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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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人物圖

산간의 개울가에서 두 인물이 서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나뭇가지의 일부가 화면 경계에

걸린 것으로 보아 원래는 더 큰 그림이었는데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어떤 고사

인물화였는지 지금 상태로는 잘 알 수 없다. 화법상 장승업의 특징적인 수지법(樹枝法)인 옹이가

많은 줄기나 손바닥을 편 것 같은 가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중년기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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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학산초추강도(倣黃鶴山樵秋江圖)
1879년(37세), 지본수묵, 22x21.4cm, 서울대박물관 
오세창이 편집했다고 전하는《근역화휘(槿域畵彙)》'지(地)'첩에 포함된 그림 이다.
이 작품은 위쪽에 "아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외로이 작은 배를 띄웠네. 기묘년 가을 본관이 대원인 장승업이 황학산초(왕몽)의 가을 경치 그림을 본따서 그렸다는 글이 있다.  
이를 통해 1879년 장승업이 37세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산과 근경 바위의 표현에 장승업의 특징인 꿈틀대는 듯한 생동감이 나타나 있어 그가 30대 중반 무렵에는 이미 자신의 산수화 양식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산수도의 기본 도상은《명공선보(名公扇譜)》에서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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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산수도(山水圖)> 자본담채, 16.6x21.7cm,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기증품인 이 <산수도>는 나무와 가옥의 표현법 등에서 기본적으로 화보식 남종화풍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필치가 좀더 자유분방해졌으며, 원산(遠山)에는 바탕 면을 이용한 연운(煙雲)을 두어 화면 전체에 생기를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종화법을 완전히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점차 특유의 호방한 필묵법과 과장된 산형(山形) 묘사로 변모해가는 과도기적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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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산수도(細山水圖)> 자본수묵, 16x21cm , 서강대박물관 

장승업이 당시 유행하던 정형화한 남종산수화풍을 완벽하게 습득하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강변의 누각에 두 사람이 마주앉아 담소하고 있고, 강 위에는 이들을 태우러 오는 듯한 배 한척이 접근하고 있다. 때는 가을인 듯 강 건너에는 갈대가 우거졌고, 이 쪽 나무들 중 일부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원 말 사대가 중 예찬식의 구도와 필묵법을 사용하여 깔끔하고 투명하며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잘 표현하였다. 화면 가운데 접힌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더 작은 화첩이었던 것 같다.
 

 

 

 

방황공방 산수도[ 倣黃子久 山水圖 ]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수묵담채 / 151.2×31.0cm
오원(吾園) 산수도(山水圖)의 전형(典型)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吾園은 화첩의 소폭(小幅)보다도 병풍이나 종축을 많이 사용하였다.화면(畵面)을 지그재그식으로 구성하여 近*中*遠景을 구분하고 遠景의高山은 黃公望(子久)의 필법을 본받아 피마준으로 부드럽게 표현했으나中景의 나무에서는 그의 힘찬 筆力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약간의 과장이 있으나 그 깔끔함이 돋보인다.
조선 말기 화단을 풍미했던 천재 화가로 유명한 오원 장승업은, 일자무식의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어깨 너머로 중국의 명화(名畵)들을 구경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들린 듯 그림을 능숙하게 그리게 되었고, 임금에게 그림을 바칠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산수, 인물, 화조, 영모, 기명절지 등 거의 모든 화목(畵目)에 정통했던 오원은, 산수에 있어서도 각종의 남. 북종화법을 혼합한 개성 있는 산수화풍을 구사하였다. 중국 원말 사대가에 속하는 황공망(黃公望)의 필의(筆意)를 따른 이 작품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원은 자신이 즐겨 사용하였던 좁고 긴 화면에, 경물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감상자의 시선이 화면 아래에서 위로 단계적으로 옮겨가도록 하였다. 꼼꼼하고 차분한 필묵법을 사용하여 전.중.후경의 어느 한 곳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완벽하게 그려내었는데, 정교한 선묘와 깔끔한 담채가 그림의 웅장함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기타해설)
 
장승업의 산수도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또한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
이다. 장승업은 세로로 긴 화폭을 즐겨 사용하였지만 이 작품은 비례상 특히 더 길다. 그래서인지 흔히 전경(前景)에 있던 무성한 숲을 중경(中景)에 배치하고전경에는 수면과 작은 언덕, 다리를 배치하였다. 또 전경과 중경 사이도 다리로
연결하여 멀리 후경(後景)까지 시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은 후경의 주산(主山)이다. 안개에 싸인 높은 산의 모습을 아주 섬세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화면위에 "방황자구묵법 오원 장승업(倣黃子久墨法 吾園 張承業)"이라는 관서가 있고, 화면 아래에 다시 "오원의황자구의(吾園擬黃子久意)"라는 제문이 있다.

 

 

 

 

 

 

송풍유수 [松風流水]


족자 비단에 담채   137*32.2cm 
장승업이 활동하던 조선 말기는 추사 김정희가 길러낸 중인 계급의 지식층 문인들이 추사 예술의 지극히 조선적인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외형적인 형사에 급급하여 맹목적인 중국풍의 호상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자연 그의 그림풍은 중국 취향이 농후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그림이 단순한 중국풍으로 외형만을 모방한 것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록 같은 중국풍이긴 하지만 그는 이응헌의 사랑방에서 어깨 너머로 보던 그림을 어느 날 갑자기 배우지도 않고 신들린 듯 그려낼 수 있었던 천재의 기질이 있었기에 그림 속에 번득이는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수백 길 벼랑 위에서 입을 열어 팔방으로 부딪치며 꺾어져 내리다가 마침내 아득히 쏟아져 내리고 마는 거폭 아래, 이에 맞서듯 창연히 솟아올라 검붉은 송린을 자랑하는 장송의 모습은 임금마저도 묶어 놓을 수 없었던 장승업의 호방불기한 기질을 말해 주는 듯하다.
 
소나무 밑 너럭바위에 마주 앉아 잠방이 차림에 가슴을 드러낸 채 폭포의 굉음을 들으며 찻물 끓기를 기다리는 선객들의 소탈 간략한 모습은 용트림하며 치솟은 소나무와 거폭에 압도당한 눈의 긴장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오원 장승업의 그림에서는 이처럼 화면에 숨막힐 듯 번득이는 박진한 생동감이 항상 넘쳐 흐르니, 이 점은 세간에 살면서 시속을 거부한 그의 대오한 자취일 것이다.
  
장승업의 작품은 현재까지 많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웅장한 스케일의 구도에 고도로 숙달된 치밀한 화법이 돋보이는  중국풍의 산수화다.  이는 장승업이 조선시대를 통틀어 웅장한 스케일을 화폭에 집약시켜 소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참으로 아쉬운 점은 탁월한 기량에도그 화풍이 중국풍이라는 취약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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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마인물도(쌍馬人物圖)

견본담채, 124x33.6cm, 고려대박물관
장승업이 그린 그림 분야는 산수, 도석, 인물, 영모, 사군자, 절지 등 두루 미쳤으며, 전래된 작품은 대소를 불문하고 가작이 상당량에 이른다.
<쌍마인물>에는 장승업의 관서나 인은 없고 다만 뛰어난 화격과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있는 묵서에 의해 장승업의 그림으로 인정되는 작품이다.
세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 소방하고 거친 나무와 하단의 성근 풀을 배경으로 해서 중앙에 쌍마와 풍채가 예스럽고 고아한 인물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의 그림에서 낯익은 얼굴이다.
좁고 긴 화면은 오른쪽 상단을 비운 변각 구도이다.
수묵이 중심이 된 유려한 필선과 채색에 있어 선염이 뛰어나며, 특히 갈색과 옅은 자주색에 흰점이 박힌 말은 색 배합에 있어 독특한 효과를 보여준다.
도석과 영모의 기량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그림이다.
단 한 점만의 독립된 그림이 아닌, 여러 폭으로 이루어진 고사인물도 병풍의 한 폭으로 생각된다
(기타 해설)
한 인물이 말 두 마리를 데리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인물의 얼굴 모습은 눈이 가늘고 턱이 풍성하며 입술이 두터운데, 장승업의 인물화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인물의 상반신이 풍선처럼 부푼 듯이 보인다. 말도 가슴과 둔부가 통통하게 살이 쪄서 역동적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역시 장승업이 즐겨 그리던 모습이다. 말의 콧잔등과 둔부에 흰색을 칠해 재미있는 강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인물과 말의 생김새가 모두 내부적 생명력이 가득 찬 듯한 느낌을 준다.
위쪽의 힘찬 필묵으로 이루어진 잡목도 장승업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화면 위에는 호정(湖亭) 노원상(盧元相)이 김윤보(金允輔)의 찬문을 썼다.
 
"오원 선생의 진적은 세간에 드물다.
원하건대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전하여 썩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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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淵明愛菊圖

이 작품은 국화를 사랑했던 시인 도연명(365~427)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늘색 옷을 입은 도연

명이 책이 수북이 쌓인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동자가 소담스럽게 핀 노란 국화 화분을 보여 주고

있다. 도연명의 얼굴은 광대뼈가 두드러졌고 턱이 넓으며 입술이 두터운데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

금고 있다. 이런 인물의 용모는 장승업이 즐겨 그리던 것이다. 또한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동자는

더벅머리에 가는 눈매, 꼭 다문 입술의 재미있는 모습인데, 역시 장승업이 즐겨 그리던 인물상이다.

한편 도연명 옆에는 마른 나무, 혹은 괴석과 같은 기이한 받침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대나무와난초

를 심은 화분이 얹어져 있다. 이런 기이한괴석, 혹은 나무 등걸은 중국 명대 진홍수의 그림에서 자

주 등장하며, 이후 청 양주팔괴나 해상파 화가들에 의해서 계승된다그리고 당시 중국이나 조선에

퍼져 있던 일종의 서화금석(書畵金石) 수집과 골동취미와도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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