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Ukraine

수도 : 키이우(키에프)
언어 : 우크라이나어
화폐 : 흐리우냐( UAH)
면적 : 6,035만 5천㏊ 세계44위(2019 국토교통부, FAO 기준)
인구 : 4,319만 2,120명 세계35위 (2022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
GDP : 1,555억 8,201만 달러 세계53위(2020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
기후 :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지대는 따뜻하다. 인접한 남부 지방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위가 심해진다.
북부지방과 서북부지방은 폴란드, 벨라루스의 기후와 같은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크림반도는 아열대성 기후로 1월과 7월의 평균기온은 각각 4℃와 23℃이고,
수도 키이우의 1월과 7월의 평균기온은 각각-6.1℃와 20.4℃이다.
동카르파티아산맥 중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600mm나 된다.
키이우에서는 연평균 강수량이 615mm이고, 강수량이 가장 적은 남동부의 흑해 연안에는
연평균강수량이 300mm에 불과하다. 눈은 보통 11월 말부터 내리기 시작한다
종교 : 우크라이나 정교, 카톨릭,개신교
우크라이나 역사
기원전 5,000년전 농경생활을 하는 정착민이 최초로 나타났으며,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 전후에 이르는 기간 중에는
키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인들이, 기원후 첫 1,000년 동안에는 고트, 훈, 불가르, 아바르, 하자르, 마자르,
페체네그 족 등이 현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배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부터 중세까지는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인들이 거주했으며,
현재에도 크림 지역에는 이들의 후손이 살고 있으며 문화 잔존
슬라브 민족 형성
카르파티아(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 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7세기경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 정착
9세기경 동슬라브 민족의 최초 봉건국가인 키이우(키예프) 공국(Kyiv Rus)이 키이우(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에 편입
키이우(키예프) 공국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 벨라루스의 모태(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에는 누가 키이우(키예프) 공국의 적자인지에 대해 논쟁이 있음)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 년간 키이우(키예프) 공국은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볼로디미르 대공 사후 12형제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으나, 여기서 승리한 야로슬라프(Yaroslav the Wise)가
왕위(재위기간 1036-1054)에 오르면서 키이우(키예프) 공국의 황금시대 개막
키이우(키예프) 공국은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쳐 몽골군의 침입을 받았고, 1240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멸망
몽골 지배 이후 많은 인구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북부로 이동하면서 모스크바 지역이 중심적 지역으로 부상
이후 2세기에 걸친 몽골족(바투 칸)의 지배 하에서 현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은 13~14세기 중 갈리시아
볼린 공국(후에는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4세기 중반 이후 점차 리투아니아, 폴란드, 터키, 몰도바에 의해 분할, 예속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합병에 따라 드니프로 강 서쪽은 폴란드에 귀속
우크라이나 민족 형성
동슬라브 민족이 확장 · 분화되면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몽골, 폴란드 · 리투 아니아 연합왕국 지배기를
거치면서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구별되는 우크라이나인의 독자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나가기 시작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인의 코작(Cossacks) 집단이 16세기 초부터 형성되었으며,
이 집단은 자포로지아 급류지역인 호르치차 섬에 소재한 자포로지아 시치(Zaporogian Sich)를 요새로 하여
1648-1654년간 독립투쟁 전개 코작 집단은 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변방 지역 수비 임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자치 및 조세 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받은 사회 집단으로 대부분 범법자나 도주 농노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제정러시아 시절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 내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코작 집단(자포로지아 코작)의
주류를 형성하였고 대폴란드 독립 투쟁도 우크라이나인 코작 집단이 주도 하였음.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자포로지아 코작, 러시아 지역에는 돈 코작 · 쿠반 코작 등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코작 집단이 존재함. 1648년부터 코작 장교였던 흐멜니츠키(Khmelnitsky)가 뛰어난 지도력으로 코작을 규합하고
폴란드와 전투를 벌였으나, 전투상황이 불리해지자, 1654년 흐멜니츠키와 러시아 황제간의 페레야슬라브(Pereiaslav)
협정 체결 페레야슬라브 협정은 코작 집단의 자치를 인정받는 조건으로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것에 합의한 협약으로
보이나, 러시아 학자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귀속된 것으로 해석하며, 우크라이나 학자들은 단순한 군사동맹으로 해석하였다. 1772년 폴란드의 해체에 따라 드니프로 강 서쪽 폴란드 점령지역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갈리시아, 볼리니아, 이바노프랑콥프크 등 일부 지역은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영토로 귀속 1905년 이후 제정 러시아에서의 反황제 혁명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도 노동자,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 빈발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시 우크라이나 인민대표 회의가 결성되었으며
1917.12. 25.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수도 : 하리코프) 선포
제1차 세계대전 말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퇴에 따라 그 지배하에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갈리치아, 볼리니아)은 1918.11월 서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동 지역 거주 폴란드 민족의 봉기 및 신생 폴란드 정부의 무력 개입으로 실패하고 이 지역은 1919. 7월 폴란드의 영토로 귀속 이바노프랑콥스키 지역은 신생 헝가리 영토로 귀속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1917-1921년간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볼셰비키파 등 6개 정파 간의 내란이 발생하였으나, 독립 쟁취에는 실패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중심으로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 독립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1917년 선포되어 활동하였지만, 수개월 후 볼셰비키 세력에 패해 소멸
내란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반러시아, 민족의식이 크게 확산됨에 따라 1921년 모스크바 볼셰비키 정부의 전략적 양보 하에 제한적 외교 주권(조약체결, 영사관할권 등)을 갖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1922.12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창설 조약에 서명, 창립 회원국이 됨(제한적 외교 주권 상실)
소련 연방 가입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민족의식은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이러한 민족의식 말살을 위해 강력한 억압정책 시행 스탈린의 1932-33년 집단농장 추진 과정에서의 인위적 기아 정책에 의해 우크라이나 농민 800만 명이 아사(Holodomor)하고 전쟁, 기근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이주하여
1939년 4.1천만 명의 인구가 1945년에는 2.7천만 명으로 대폭 감소
1934년 키이우(키예프)는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소련 당시 모스크바, 레닌 그라드 다음의 제3의 도시로 성장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대전을 계기로 소련은 폴란드에 귀속된 西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베사라비아, 北부코비나를 병합
1941년 당시 소련 내 우크라이나 영토는 56만km2
1941-44년 우크라이나 전역이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됨
1945년 유엔 창설 회원국 (소련 내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유엔 회원국 가입)
1953년 소련 정부는 스탈린 사후 우크라이나에 로켓, 전자, 화학, 조선 산업 등 중화학 시설 건설
1954년 소련 정부는 페레야슬라브 협정 300주년을 기념하여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이양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 8. 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 선언법을 채택하고 1991. 12. 1.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을 최종 확정
1991. 12. 5. 레오니드 크라프축(Leonid Kravchuk)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1. 12. 8.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3개국 정상 간에 소비에트 연방 탈퇴 문서에 정식 서명
독립 후 1994.3월, 1998.3월, 2002.3월 각각 제 2, 3, 4대 총선이 있었고, 1996.6.28.에는 신헌법 채택
1994.6월 제2대 대통령으로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가 당선, 1999.11월 제3대 대통령에 재선
2004.11월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야권의 불복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2005.1월 빅토르 유센코(Viktor Yushchenko) 야당 후보가 제4대 대통령에 취임
2010.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제5대 대통령 취임
2013.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EU와 제휴협정(Association Agreement, AA) 체결 추진 포기 및
러시아와 관계강화 선언에 따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촉발
2014.2월 헌법개정안(대통령 권한 약화) 통과 실패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더 격화되고 정부가 강경 대응함으로써
마이단 혁명(친서방 반정부 시민운동) 발발. 정부/경찰은 반정부 시위대를 강경 진압,
100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했고,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주
2014. 3. 16. 크림반도 러시아 합병 관련 주민투표 실시 결과 90% 이상 찬성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완료(3. 21.)
2014.4월 親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2개州(도네츠크州, 루간스크州) 분리주의 무장 세력과 정부군간 교전 발발 및 지속 2014.5월 동 반군점령지역(2개州의 40-45% 면적, 주민수 320만 명)은 분리독립 주민 투표 강행 및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및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정부수립 선언(우크라이나 중앙정부 및 국제사회는 미승인)
2014.5월 조기대선 실시,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 제6대 대통령 취임
2014.6월 우크라이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4개국 지도자가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서
회동하여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 방안 협의
동 4개국은 그 후 “노르망디 포맷(Normandie Format)”이라 불리는 외교협의체를 통해 대화 지속중
2014.9월 우크라이나, 러시아, 동부2개州(도네츠크州, 루간스크州)간 제1차 민스크 협정 체결,
2015.2월 제2차 민스크 협정 체결
우크라이나-EU간 제휴협정 체결(2014. 6. 27.) 및 발효(2017. 9. 1.),
EU와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DCFTA) 발효(2016. 1. 1.),
EU와 단기 무비자 사증면제협정 발효(2017. 6. 11.)
2018.11월-12월 우크라이나, 對러 인접 10개州에서 계엄령 시행
11. 25. Kerch대교 인근해역에서 러시아 함정과 Azov해로 진입하려던 우크라이나 해군 선박 3척(승조원 등 24명 포함)간 충돌 및 러측에 의한 우크라이나 선박 및 승조원 나포 발생 직후 시행
2019.3월 대통령 선거 실시(1차투표) 4. 21. 결선투표에서 젤렌스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
2019.5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
2019.7월 국회의원 총선 실시
2019.9월 Azov해 군함 충돌사건으로 억류된 승조원 전원 석방 및 2019.11월 나포 선박 3척 반환
2019.12월 노르망디 포맷 정상회담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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