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엔까

アンコ椿は恋の花 (앙코쓰바키와 고이노하나) / 都はるみ(미야코하루미)

산천초목 2022. 1. 28. 15:07

 

アンコ椿は恋の花  ( 앙코쓰바키와 고이노하나  : 아가씨동백은사랑의꽃 )   

                                                                        - 都はるみ(미야코하루미) -

 

밋카 오쿠레노 타요리오 노세테 三日 おくれの 便りを のせて 사흘 늦은 편지를 싣고서

후네가 유쿠유쿠 하부미나토 船が 行く行く ハブ港 배가 떠나가네 하브항구

이쿠라 스키데모 아나타와 토오이いくら 好きでも あなたは 遠い아무리 좋아해도 당신은 저멀리

나미노 카나타에 잇타 키리 波の 彼方へ 行った きり 파도의 저너머로 떠나간채로

앙코타요리와 앙코타요리와 アンコ便りは アンコ便りは 아가씨 편지는 아가씨 편지는

아∼아 카타 타요리 あ∼あ 片 便り 아∼아 답없는 편지

 

미하라야마카라 후키다스 케무리 三原山から 吹き出す 煙 미하라산에서 내뿜는 연기가

키타에 나비케바 오모이다스 北へ なびけば 思い出す 북으로 날리면 생각이나네

호레챠 나라나이 미야코노 히토니 惚れちゃ ならない 都の 人に 반해선 안될 도시의 사람에게

요세루 오모이가 히토 모에테 よせる 思いが 燈と もえて 사모하는 생각이 불로 타 올라

앙코츠바키와 앙코츠바키와 アンコ椿は アンコ椿は 아가씨 동백은 아가씨 동백은

아∼아 스스리 나키 あ∼あ すすり 泣き 아∼아 흐느껴 우네

 

카제니 히라히라 카스리노 스소가風に ひらひら かすりの 据が 바람에 팔랑팔랑 잔무늬 옷자락이

마에바 하즈카시 쥬우로쿠노 舞えば はずかし 十六の 펄럭이면 부끄러운 열여섯의 나이

나가이 쿠로카미 붓츠리 킷테 長い 黑髮 プッツリ 切って 길다란 검은 머리 싹둑 잘라서

카에루 카모메니 타쿠시타야 かえる カモメに たくしたや 돌아가는 갈매기에 보내고 싶어

앙코츠보미와 앙코츠보미와 アンコつぼみは アンコつぼみは 아가씨 꽃망울은 아가씨 꽃망울은

아∼아 코이노 하나 あ∼あ 戀の 花 아∼아 사랑의 꽃

 

 

 

 

일본의 재일 한국인 가수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1948~)

아버지 ‘이종택’(李鐘澤. 1904~1987)은 한국인 ‘마츠시로’(松代. 1919~2005)와 결혼하여

1948년 ‘미야코 하루미’를 출생합니다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1948~)의 본명은

‘기타무라 하루미’(北村春美)이며 한국 이름은 이춘미(李春美)입니다. 

교토 시에 있는 라쿠요 종합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가수가 되고싶다는 이유로 중퇴하였다.

1964년 17살의 나이로 콜롬비아레코드사가 주최한 제14회 가요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곤란한 거예요’(困るのことヨ)라는 노래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같은 해 발표한

일본 이즈반도(伊豆半島)의 동백꽃으로 유명한 ‘이즈오섬’(伊豆大島)을 소재로 만든

‘아가씨 동백꽃은 사랑의 꽃’(アンコ椿は 恋の花)이라는 노래가 일본 열도를 흔들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후 1965년 발표한 ‘눈물의 연락선’(涙の連絡船) 이

155만 장의 앨범판매를 기록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오면서

그해 연말 일본 가수의 꿈에 무대인 제16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하게 됩니다.

이후 1984년까지 20년 연속 홍백가합전 출장이라는 인기 정상의 가수가 되었습니다.

독특한 꺾기 창법을 잘 구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그녀는 주로 애수(哀愁)가 담긴 곡들을 많이 노래했으며, 

이외에도 고향인 교토를 소재로 한 노래들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1964년 《제6회 일본 레코드대상》 신인상. 1976년 《제18회 일본 레코드대상》

대상 (北の宿から).1980년 《제22회 일본 레코드대상》 최우수 가창상.

2006년 《제24회 교토 부 문화상》 공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