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흘러간 옛노래

단종의 최후 / 김용만

산천초목 2013. 5. 1. 12:38

   

 

단종의 최후     - 김용만 -  

 

적막한 산중에 달빛만 흐르고
숲속에 부엉새 구슬피 우는고나
금지옥엽 자라신 나어린 임금님
강원도 영월산골 갇힌몸이 웬말이오 

저달이 기울면 목숨도 끊기고
쌓으신 돌탑도 힘없이 무너졌네
어데선지 애끓는 청승곡 한곡조
단종의 산중고혼 원망하는 넋두리야

 

 

- 청 령 포 를 둘러보며 -

청령포 전경


어느 날 양녕대군이 세조에게 말했다.
"옛 사람의 말에 천군(千鈞=아주 무거운)의 활로는 작은 쥐를
쏘지 않는다 하니,

원컨데 전하께서는 이 말을 잊지 마소서!.

서거정 의 필원잡기에서 읽은 이야기다. 서거정은 이 이야기 끝에,양녕대군은
역시 보는 눈이 기이하다고 했다.그렇다면 무엇을 보는 눈이 기이하다는 건가 ?
마래를 보는 눈을 말하겠지! 양녕은 어린 단종(당시상왕)의 비극적인 앞날,
세조가 벌릴 그 피비린내 나는 앞날을 미리 본 것이다.

1455년 조선의 제6대 왕, 어린 단종은 3촌 세조의 강요로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1456년 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뀌하자 세조는 그들을
주륙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여 천만 리 머나 먼 길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시켰다.

그 땅이 바로 청령포이다.1457년 일이다. 그 때 이 비극의 어린 임금을 호송한
한 관원이 있었다.바로 왕방연이다.그가 돌아오는 길에 하도 마음이 아파
시조 한수를 읊었으니 바로 이 시조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야 울어 밤 길 예는도다.

왕방연의 마음을 보자.
천만 리 머나먼 영월땅에 가엽고 새순처럼 어린 임금을 사방이 물로 둘러쌓인
적막강산을 이룬 청령포에 홀로 남기고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도무지 마음을 둘 데가 없었다.그래서 시냇가에 앉았다.
마음처럼 밤도 어두워 왔다.냇물이 끊임없이 졸졸 울며 밤길을 가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없이 우는 자신의 마음 그대로였다.

다시 1457년, 단종의 다른 숙부인 금성대군(세조의 동생,세종의 6째아들)
이 단종의 복위를 뀌하다가 사사되었다.이로인하여 단종은 다시 서인(庶人)
으로 내려지고 마침내 자살을 강요받아 한 많은 일생은 끝이났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 시대에 상황을 알고나 쓰는 것일까...
공연히 마음이 수수롭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그 날
세조의 친국현장에서
집현전의 동료였던 신숙주가 배석해 있었다

처절한 고문현장에서 성삼문등의 힐난을 받자
세조의 눈짓에 의해 신숙주가 자리를 황망히 떴고

그날 퇴청후 집에 돌아오자 부인 문씨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뜨며 말하길
"오늘 대감도 함께 순절하신 줄 알았더니 살아서 돌아 오시다니요..."
"당신과 아이들 때문에 죽지 못하였소"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당신 이름 석자가 더럽소"라며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보니
목을 맨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사육신이 갈갈이 찢어져 죽던 날..
70여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따라 죽었다

임이 주신 밥을 먹고 임이 주신 옷을 입엇기에
평소의 뜻을 평생 동안 어기지않기를 바랐었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의가 있음을 알리거니
현릉(顯陵)의 소나무는 꿈속에서도 푸르리라

- 형장으로 수레에 실려 떠나면서 성삼문이지은 시--

둥둥둥 북소리는 사람 목숨 재촉하는데
머리 돌려 돌아보니 해는이미 기울었네
머나먼 황천길에 주막하나 없으려니
오늘밤을 뉘집에서 재워줄꼬....


--성삼문 처형직전에 남긴 마지막 시--

사육신이 처형되고 20여일 만에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단종이 머물던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의 집에서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영월읍에서 30리 쯤 떨어진 청령포....

이때 단종을 영월까지 호송해간 왕방연의 시..
천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같아 울며 밤길 예노메라

고독한 외로움에 두견새 우는 소링 애간장을 태우던 16세의
소년 왕 단종은 '출제궁(出帝宮)' 이란 시 한 수를 읊었다

원한 맺힌 새 한 마리 궁궐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외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매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들 길 없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없네
두견새 소리 그치고 새벽달은 서산에 흰데
피 뿌린듯한 봄 산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이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어찌타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사랑하는 부인 송씨를 이별하고 영월땅에 내려온지 1년 반..

어느 날.. 공교롭게도 그를 호송해 왔던 왕방연이 다시 찾아와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시간이 흐르니
이를 본 단종을 모시던 시종하나가 활시위에 노끈을 매달아
단종의 목에다 걸고 창문 구멍으로 잡아 당겨
한많은 소년왕의 생애를 마감케 하였다
1457년 음력 12월 24일...17세

그를 옭아맨 시종은 미처 집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아홉구멍으로 피를 쏟고 그 자리에서 죽으니
사람들이 천벌을 받았다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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