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글,시

귀천(歸 天 ) / 천상병

산천초목 2012. 2. 18. 17:48

 

 

 

 

 

 

 

歸 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광화문 근처의 행복 

광화문에, 옛 이승만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論說委員인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기어코 나의 단골인‘아리랑’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차값을 내고그리고 천원짜리 두개 주는데-

나는 그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포켓에서 이천원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귀찮아! 귀찮아!’ 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때 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部長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自由와 幸福의 봄을- 꽃동산을-이룬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저와 같은 버러지에게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막걸리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氣分만 좋은 것이다.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디론지 날 수 있는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旅行이라고는 新婚旅行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山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이 유익한 빛깔을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안타깝다. 

 

구름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나님을 도우는 천사님이시여 즐겁게 쉬고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오니

널리 용서하소서.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人間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文學社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文人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幸福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참새 

참새 두 마리가 이좋게 날아와서

내 방문 앞에서 뜰에서

氣分좋게 쫑쫑거리며 놀고 있다. 

저것들은 친구인가 부부인가?

하여튼 아주 즐거운 모양이다.

저들같이 나도 좀 안될지 모르겠다. 

本能으로만 사는 새들이여 참새여

사람은 理性이니 哲學이니 하여

너희들보다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  

 

궁화 

나의 처가집은 우리집 가까이 있는데

무궁화가 해마다 곱게 핍니다. 

무궁화는 우리들 나라꽃입니다

그 나라꽃을 해마다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저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도 다섯 송이나 사랑할 수 있다니

장모님과 처남에게

따뜻한 情을 더구나 느끼게 됩니다

나라꽃이여 나라꽃이여 永遠하여라. 

 

茶 집 

이른 아침에 茶집에 들렀더니

위선 홍차를 주고 나는 커피를 시킨다.

친구들은 어디 있을까.

가야 형편없으므로 기역 기역가지 않을까.

가는 者는 가고 오는 者는 오너라.

孔子님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글자를 많이 쓰고 儒敎(?)를 퍼뜨렸다네.

나와 꼭 같은 거야.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꽃

뭇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永遠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上空 수놓네. 

 

 피리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달은 가지 않고

달빛은 교교히 바람만 더불고-

벌레소리도 죽은 이 밤

내 마음의 슬픈 가락에 울리어 오는

아!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가

옛날에는달 보신다고 다락에선

커다란 잔치피리 부는 樂官이 피리를 불면

고운 宮女들 춤을 추었던

나도 그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볼 수가 없다면은 만져라도 보고싶은 이 밤

그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가.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데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한 가지 所願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편지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그 다음 날.

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情感에 그득찬 季節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낡은 목청을 뽑아라.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천상병: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 11집에 시 《공상()》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 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무직·방탕·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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