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세월에 닻을 내리고 떠나지 못하는 추억에 머무르며

글,시

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 이외수

산천초목 2007. 7. 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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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 이외수 -
 
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흐린 세월 속으로 시간이 매몰 된다
매몰되는 시간 속에는 누군가가 나지막이 울고 있다
잠결에도 들린다.
 
비가 내리면 불면증이 재발 한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일수록
종국에는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게 된다.
비는 서랍속의 해묵은 일기장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무리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보아도 소급되지 않는다. 시간의 맹점이다
일체의 교신이 두절되고 재회는 무산 된다
나는 일기장을 태운다. 그러나 일기장을 태워도
그리움까지 소각되지는 않는다.
 
는 뼛속을 적신다.
뼈저린 그리움 때문에 죽어간 영혼들은 새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새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새들은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뼈저린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까?
빗속에서는 시간이 정체 된다
나는 도시를 방황한다.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범람하는 통곡 속에서 해체 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목로주점
홀로 마시는 술은 독약처럼 내 영혼을 질식시킨다.
집으로 돌아와 바하의 우울한 첼로를 듣는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날이 새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목이 메인다.


우리가 못다 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해도
돌아갈 수 없는 전생 나는 누구를 사랑했던가?
유배당한 영혼으로 떠도는 세속의 거리에는
예술이 암매장되고 신화가 은폐 된다

 
물안개 자욱한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체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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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 Her So Bad - Aynsley Lister 



이외수

1946. 8. 15. 경상남도 함양출생 

1965 춘천교육대학교 중퇴

 

탁월한 상상력과 빼어난 언어연금술로 신비하고 독특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21세기의 기인 소설가이다. 1946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으나,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대구와 강원도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기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한 후 1968년 군에 입대해 1971년 제대하고, 1972년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했다.

1972년 《강원일보신춘문예단편소설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고, 1975년 《세대()》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소설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중앙문단에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단편소설 《꽃과 사냥꾼》(1976) 《고수()》(1979) 《개미귀신》(1979)을 비롯해 원시생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의식을 추구한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8) 등을 발표하면서 섬세한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소설가란 평과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문사와 학원 등으로 전전하던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몰두하게 된다.

전업작가의 길을 택한 후 일상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작가정신을 고수하면서, 단편소설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와 중편소설 《장수하늘소》 장편소설 《들개》 《칼》 등을 잇달아 발표해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작가는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 개인전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삽화가 돋보이는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등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한편, 특유의 감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라는 시집과 산문집 《감성사전》(1994)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함으로써 문학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있다.

저서에 창작집 《겨울나기》(1980)를 비롯해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등이 있다. 이 밖에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과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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