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풀꽃 / 나태주

산천초목 2021. 10. 17. 22:58

 

풀꽃1       - 나태주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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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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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꽃을 보듯 너를 본다>(지혜)에 실린 시들입니다

 

 

부탁이야       - 나태주 -

 

오래가 아니야 조금
많이가 아니야 조금
네 앞에서 잠시
앉아있고 싶어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금방 보고 헤어졌는데도
보고 싶은 네 얼굴
금방 듣고 돌아섰는데도
듣고 싶은 네 목소리

어둔 하늘 혼자서 반작이는 나는 별
외론 산길에 혼자서 가는 나는 바람

웃는 네 얼굴 조금만 보고
예쁜 목소리 조금만 듣고
이내 나는 떠나갈 거야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사는 일   - 나태주 -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나랫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출생1945. 3. 16. 충청남도 서천

데뷔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 등단

수상2020년 제31회 김달진문학상 시부문

2019년 제3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2017년 제13회 김삿갓문학상

경력2020.04~ 제43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2010.07~2017.06 공주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