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국경의 밤 / 김동환

산천초목 2013. 3. 19. 13:06

 


국경의 밤         -  김동환  -

 

第一部     
  1
"아하, 無事(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男便(남편)은
豆滿江(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國境江岸(국경강안)을 警備(경비)하는
外套(외투) 쓴 검문 巡査(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奔走)히 하는데
發覺(발각)도 안 되고 無事(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密輸出馬車(밀수출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 가며 속태이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脈(맥)이 풀려져
파! 하고 붓는 魚油(어유) 등잔만 바라본다.
北國(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나오는 듯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村民(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妻女(처녀)만은 잡히우는 男便(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營林廠) 山林(산림)실이 筏夫(벌부) 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가는 病者(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變(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 죽일 제
이 妻女(처녀)만은 江(강)도 채 못 건넌 얻어맞은 사내 일이라고
문비탈을 쓰러안고 흑흑 느껴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三冬(삼동),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끊는 소리언만.

  4
불이 보인다 샛빨간 불빛이
저리 江건너
對岸(대안)벌에서는 巡警(순경)들의 把守幕(파수막)에서
玉黍(옥서)짱 태우는 빨-간 불빛이 보인다.
까맣게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胡酒(호주)에 醉(취)한 巡警(순경)들이
월월월 李太白(이태백)을 부르면서.

  5
아하, 밤이 漸漸 (점점)어두어간다.
國境(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간다.
함박눈조차 다 내뿜는 맑은 하늘엔
별 두어개 파래저
어미잃은 少女의 눈동자같이 깜박거리고
눈보라 甚(심)한 江(강)벌에는
외아지 白楊(백양)이
혼자 서서 바람을 걷아안고 춤을 춘다.
아지 불러지는 소리조차
이 妻女(처녀)의 마음을 핫! 핫! 놀래 놓으면서-

  6
電線(전선)이 운다, 이잉 이잉 하고
國交(국교)하러 가는 電信(전신)줄이 몹시도 운다.
집도 白楊(백양)도 山谷(산속)도 외양간 당귀도 따라서 운다.
이렇게 춥길래
오늘따라 間島移舍(간도이사)꾼도 別(별)로 없지
어름짱 깔린 江(강)바닥을
바가지 달아매고 건너는
밤마다 밤마다 외로이 건너는
咸鏡道(함경도) 이사꾼도 별로 안보이지.
會寧(회령)서는 벌써 마지막 車(차)고동이 텄는데.

  7
봄이 와도 꽃한폭 필 줄 모르는
강건너 山川으로서는
바람에 눈보라가 쏠려서
江 한복판에
秦始王陵(진시왕릉)같은 무덤을 쌓아 놓고는
이내  鴨池(압지)를 파고 달아난다.
하늘 땅 모두 晦瞑(회명)한 속에 白金(백금)같은 달빛만이
白雪(백설)로 五百里(오백리), 月光(월광)으로 三千里(삼천리),
豆滿江(두만강)의 겨울밤은 춥고도 고요하더라.

  8
그날 저녁 우스러한 때이었다.
어디서 왔다는지 焦燥(초조)한 靑年(청년) 하나
갑자기 이 마을에 나타나 오르락내리락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달빛에 잠자는 豆滿江(두만강)이여,
눈보라가 깔려 우는 옛날의 거리여,
나는 살아서 네 품에 다시 안길 줄 몰랐다.
아하, 그리운 옛날의 거리여!'
애처로운 그 소리 밤하늘에 울려
靑孀寡婦(청상과부)의 하소연같이 슬프게 물렸다.
그래도 마을 百姓(백성)들은

또 '못된 녀석'이 왔다고,
수군거리며 門(문)을 닫아매었다.

  9
높았다--낮았다--울었다--웃었다--하는
그 소리 廢墟(폐허)의 재 속에서
나래를 툭툭 털고 내려와 외우는 白鳥(백조)의 노래같이
마디, 눈물을 따아내었다, 마치
"애들아 마지막날이 왔다" 하는 듯이
"모든 것이 壞滅(괴멸)할 때가 왔다" 하는 듯도
여럿은 어린애고 자란이고
화로불에 마주 앉았다가 約束(약속)한 듯이 고요히 눈을 감는다.
하느님을 찾는 듯이
"저이들을 救(구)해 줍소서"
그러다가 발소리와 같이 "아하" 부르는 靑年(청년)의 소리가 다시 들리자,
"에익! 빌어먹을 놈!" 하고 침을 뱉는다.
그 머리로서는 密偵(밀정)하는 소리가 번개치듯 지나간다.
---그네는 두려운 過去(과거)를 가졌다.
생각하기에도 애처로운 記憶(기억)을 가졌다.
그래서 그물에 놀랜 참새처럼
늘 두려운 가슴을 안고 지내간다.
不常(불상)한 족속의 가슴이 늘 얼어서!

  10
靑年의 노래는 끊일 줄 몰랐다.
"옛날의 거리여!
父母의 무덤과 어릴 때 글 읽던 書堂(서당)과 訓長(훈장)과
그보다도 물방아간에서 만났던 색시 사는
고향아, 달빛이 파래진 S村아!"
여러 사람은 더욱 놀랐다 그 大膽(대담)한 소리에
마치 어는 피묻은 입이,
'리벤지'를 부르는 것 같아서
村 百姓(촌 백성)들은 장차 올 두려운 運命(운명)을 그리면서
不安(불안)과 恐怖(공포)에 떨었다.
그래서 핫! 하고 끌을 집은 채 쓰러졌다.

  11
바람은 이 조그마한 S村을 삼킬 듯이 심하여 간다.
S村뿐이랴 江岸(강안)외 두 다른 國土(국토)와 人家(인가)와 風景(풍경)을

시름없이 덮으면서
筏夫(벌부)의 소리도 고기잡이 어름짱 잠그는 소리도 溝火(구화)불에 마주선

中國巡警(중국순경)의 주정소리도,
수비대 보초의 소리도
檢閱(검열) 맡은 '필림'같이 뚝뚝 中斷(중단)되어 가면서, 그래도
이 속에도 어린애 안고 우는 村妻女(촌처녀)의 소리만은 더욱 分明(분명)하게 또 한가지
放浪者(방랑자)의 呼訴(호소)도 더욱 뚜렷하게
울며, 싸며 한숨짓는 이 모든 揆音(규음)이
부서진 '피아노'의 鍵盤(건반)같이
散散(산산)히 깨뜨려 놓았다. 이 마을 平和(평화)를--

  12
妻女(처녀)는 두렵고 시산하고 참다 못하여
門(문)을 열고 하늘을 내다 보았다.
하늘엔 불켜는 房(방)안같이 환-히 밝은데
가담∼黑汁(흙즘)같은 구름이 배기어 있다.
"응 길고 맑은데--"하고 멀리 山굽이를 쳐다 보았으나
아까 나가던 男便(남편)의 모양은 다시 안보였다.
바람이 또 한 번 哮咆(효포)하며 지난다.
그때 이웃집으로 기와장이 떨어지는 소리 요란히 난다--
처마끝에 달아맨 苦草(고추)다램이도 흩어지면서
그는 "에그 추워라!"하고 門을 얼른 닫았다.

  13
먼 길가에선 술집幕(막)에서 널문 닫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에익…허…하…하는 酒酊(주정)꾼 소리도
"춥길래 오늘 저녁 門(문)도 빨리 닫는가 보다" 하고 속으로 외우며
妻女(처녀)는 돌부처같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근심없는 사람 모양으로.

이렇게 스산한 밤이면은
사람소리가 그립으니
웩--웩--거리고 자나는 酒酊(주정)꾼 소리도.

  14
妻女(처녀)는 생각하는 양 없이
出嫁(출가)한 첫해 일을 그려보았다-
밤마다 밤마다 저혼자 베틀에 앉았을 때,
男便(남편)은 곤해 코 골고--
고요한 밤거리를 불고 지나는
머슴아이의 玉銅簫(옥동소)소리에
九谷(구곡)에 靑(청)제비 우는 듯한 그 哀然(애연)한 音調(음조)를 듣고는
그만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도 하였더니
그저 섧고도 안타까워서--
山(산)으로 간 男便(남편)이 저물어도 안올 때,
울타리에 기대어 먼 山(산)기슭을 바라보노라면
오시는 길을 지키느라면
멀리 울리는 강아지 소리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지었더니
갓난애기의 첫해가 작고 섧어서--

그보다도 가을 밤 옷 다듬다
뒤書堂(서당)집 老訓長(노훈장)의 외우는 "孔子曰, 孟子曰" 소리에
빨래 다듬이도 잊고서 그저 가만히
엎드려 있노라면
마을 도리로 늦게 돌아오는 男便(남편)의
구운 甘藷(감저) 갖다 주는 것도 맛없더니
그래서∼ 저혼자 이불 속에서
鷄鳴(계명)때 지나게 울기도 하였더니,

"아, 옛날은 꿈이구나!" 하고 妻女(처녀)는 世上(세상)을 다 보낸 老人(노인)같이
撫然(무연)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妻女(처녀)는 운다.
오랜 동안을 사내를 속이고 오던 마음이 오늘밤 따라와 터지는 것 같아서.
--그는 어릴 때 아직 머리태를 두었을 때--
도라지 뿌리 씻으러 샘터에 가면
강아지 몰고 오는 머슴아이, 만나던 일
깔잎으로 풀幕(막)을 짓고
둘이서 물싸움 하던 일
해지기도 모르게,
물장구 치고 물싸움 하고 그러던 일,

그러다가 妻女(처녀)는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옳아, 그이, 그 諺文(언문)하던 선비! 어디 갔을까" 하고 무릎을 친다.
그리고 입속으로 "옳아, 옳아, 그이!"하고는
빙그레 웃는다. 꿈길을 따르면서--옛날을 가슴에서 파내면서,

  15
바깥에선 밤개가 컹컹 짖는다. 그 서슬에 "아뿔사 내가 왜?"
하고 妻女(처녀)는 황급히 일어나 門(문)턱에 매어달린다. 罪(죄)되는 일을 생각한 것같이

그러나 달과, 바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南山 烽火堂(남산 봉화당) 꼭대기에선
星座(성좌)들이 陣(진)치고 한창 楚漢(초한)을 다투는데--

  16
"아하, 설날이 아니오고, 또 어린애가 아니었더면
國禁(국금)을 破(파)하고까지 男便(남편)을
이 한밤에 돈 벌로
강 건너 되땅으로 보내지 않았으련만
無智(무지)한 兵丁(병정)에게 들키면 그만이지.
가시던 대로 돌아오시랴.
에그, 寡婦(과부)는 싫어, 喪服 (상복)입고 山所(산소)에 가는 寡婦(과부)는 싫어"
빠지직빠지직 타오르는 心火(심화)에
앉아서 울고 서서 맴도는
시골 아낙네의 겨울밤은 지리도 하여라.
다시는 人蹟氣(인적기)조차 없는데
뒤 山谷(산곡)에는 곰 우는 소리 요란코.

  17
異常(이상)한 靑年(청년)은 그 집 문깐까지 왔었다.
여러 사람의 惡罵(오매)하는 눈살에 쫓겨
뼈다귀 찾는 미친 개 모양으로 우줄∼ 떨면서
오막사리 집문앞까지 왔었다. 누가 보았던들
亡命(망명)하여 온 異邦人(이방인)이 捕吏(포리)의 눈을 逮(체)하는 것이라 안했으랴.
그는 空然(공연)
"여보 주인!"
하고 굳어진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서슬에 地獄(지옥)서 온 使者(사자)를 만난 듯이
온 마을이 프드득 떤다.
그는 이어서 白骨(백골)을 도적하려 墓地(묘지)에 온 者(자)처럼
連(연)해 눈쌀을 四方(사방)에 펼치면서 날로운 말소리로
"여보세요 主人! 문을 열어주세요."

  18
딸그락딸그락 울려 나오는 그 소리.
萬人(만인)의 가슴을 못질할 때
모든 것은 기침 한 번 없이 고요하였다.
天地創造前(천지창조전)의 大空間(대공간)같이……
그는 다시 눈을 흘켜 살길 듯이 바라보더니
"여보, 主人! 주인! 주인?"
아, 그 소리는
不當(부당)하게도 脈(맥)이 풀어져 고요히 앉아 있는 아내의 魂(혼)을

掠奪(약탈)하고 말았다.
사내를 死地(사지)에 보내고 정황없어 하는 아내의--

  19
妻女(처녀)는 그 소리에 놀랐다.
그래서 밖에선 밖에선 더 急(급)하게
"나를 모르세요? 내요? 내요!"
하고 繼續(계속)하여 난다, 그러면서
주먹이 똑 똑 똑 하고 門(문)지방에 와 맞친다.
妻女(처녀)의 가슴도 똑 똑 똑 때리면서
젊은 女子(여자)를 잠가 둔 聖堂門(성당문)을 똑똑똑 두드리면서.

  20
妻女(처녀)는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거이 氣絶(기절)할 듯이 두려워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男便(남편)이 떠날 때
洞里區長(동리구장)이 달려와 말 목께를 붙잡고
"오늘 저녁엔 떠나지를 마오, 부디 떠나지를 마오, 이상한 靑年(청년)이 나타나

무슨 큰 禍變(화변)을 칠 것 같 소.
부디 떠나지를 마오. 昨年(작년) 일을 생각하거든 떠나지를 마오."
그러길래 또 무슨 일이 있는가고,
미리 怯내어 앉았을 때 그 소리 듣고는
그는 에그-하고 겁이 덜컥 났었다.
죽음이 어디서 빤히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몸에 오소속 소름이 친다.

  21
그의 떨리는 주먹은 쉬지 않았다. 똑--똑--똑--
"여보세요, 내요! 내라니까"
그리고는 무슨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있다, 한참을
"아, 내라니까, 내요, 어서 조금만"
'아하, 아하, 아하---'
靑年(청년)은 그만 쓰러진다.
凍死(동사)하는 건지 추위에 넘어지듯이
그때 妻女(처녀)는 제 가슴을 만지며
"에그, 어쩌나, 죽나보다--"하고 마음이 쓰라렸다.
"아하, 아하, 아하, 아하"
땅속으로 꺼져가는 것 같은 마지막 소리
차츰 희미하여가는데 어쩌나! 어쩌나? 아하, --'

"내라니까요 내요, 아 조금만…" 그것은 確實(확실)히!
마지막이다, 알 수 없는 靑年(청년)의 마지막 부르짖음이다--
이튿날 첫아침에 흰눈에 묻힌 송장 하나가 놓이리라.
건치에 말아 江(강)물 속에 띄워 보내리라.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放浪者(방랑자)를--
妻女는 이렇게 생각하매,
"에그 차마 못할 일이다!" 하고 가슴을 뜯었다.
어쩔가 들여 놓을까? 내버려 둘까?
間諜(간첩)일까, 馬賊(마적)일까, 아니 착한 사람일까?
妻女(처녀)는 혼자 얼마를 망설였다.
"아하, 나를 몰라, 나를--나를, 이 나를……."
그 소리에 그는 깜짝 놀랐다.
어디서 꼭 한 번 들어본 것 같기도 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물귀신에게 홀린 濟州道海女(제주도해녀)같이
그래서 門(문)꼬리를 쥐었다.
金屬性(금속성)소리 딸가닥하고 난다.
그 소리에 다시 놀라 그는 뒷걸음 친다.

  22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靑年(청년)이었다.
그는 창살에 넘어지는 아낙네의 그림자를 보고는
미친 듯 내려서며, 다시
"내요--내요--" 부른다.
溺水者(익수자)가 배를 본 듯 외마디의 소리, 精誠(정성)을 다한--

  23
妻女(처녀)는 그래도 決斷(결단)치 못하였다.
열지 안으면 불쌍하고, 열면 두렵고,
그래서 문꼬리를 쥐고 삼삼 돌았다.
"여보세요, 어서 조금만 아하--"
그러면서 마지막 똑똑을 두드린다.
마치 破船(파선)된 배의 汽罐(기관)같이
차츰차츰 弱(약)하여져 가면서--

  24
妻女(처녀)는 될 대로 되라는 듯이 門(문)을 열고 있다.
지켜 섰던 바람이 획! 하고 귀볼을 때린다.
그때 疑問(의문)의 靑年(청년)도 우두커니 섰다.
더벅머리에 눈살이 깔리고 바지에 증갱이
달빛에 石骨彫像(석골조상)같이 꿋꿋하여진 그 放浪者(방랑자)의 골!

  25
魚油(어유)불이 삿! 하고 둘 사이를 흐른다.
모든 揆音(규음)이 죽은 듯 하품을 친다.
"누구세요, 당신은 네?"
靑年(청년)은 한 걸음 다가서며
"내요, 내요. 내라니까--"
그리고는 서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주 大膽(대담)하게 아주 沈靜(침정)하게.

  26
그것도 瞬間(순간)이었다.
"앗! 당신이 에그머니!" 하고 妻女(처녀)는 놀라 쓰러진다.
靑年(청년)도
"亦是 (역시) 옳았던가 아, 順伊(순이)여"
하고 문지방에 쓰러진다.
로댕의 彫刻(조각)하여 놓은 有名(유명)한 彫像(조상)같이 둘은 가만히 서 있다.
달빛에 파래져 神秘(신비)하게, 거룩하게

  27
아하 그리운 한 옛날의 追憶(추억)이여.
두 塑像(소상)에 덮이는 한 옛날의 단순한 記憶(기억)이여!
八年後(팔년후) 이 날에 다시 불탈 줄 누가 알았으리.
아, 處女(처녀)와 總角(총각)이여,
꿈나라를 建設(건설)하던 處女(처녀)와 總角(총각)이여!
둘은 고요히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따스한 날을 들춘다--
國境(북경)의 겨울밤은 모든 것을 싸안고 달아난다.
거의 十年(십년) 동안을 울며 불며 모든 것을 壞滅(괴멸)시키면서 따라난다.
집도 헐리고, 물방앗간도 갈리고, 山(산)도 變(변)하고

하늘의 白狼星 位置(백낭성 위치)조차 조금 西南(서남)으로 비틀리고
그러나 이 靑春男女(청춘남녀)의
가슴속 깊이 파묻혀둔 記憶(기억)만은 잊히지 못하였다.
봄꽃이 져도 가을 열매 떨여져도
八年(팔년)은 말고 八十年(십팔년)을 가보렴 하듯이 고이고이 깊었다.
아, 처음 사랑하던 때!
처음 가슴을 마주칠 때!
八年前(십팔년)에 아름다운 그 기억이여!



第二部
  28
멀구광주리 이고 山기슭을 다니는
마을 處女(처녀)떼 속에,
順伊(순이)라는 今年(금년) 열여섯 살 먹은 在家僧(재가승)의 따님이 있었다.
멀구알같이 까만 눈과 노루 눈썹같은 빛나는 눈초리,
게다가 웃을 때마다 방싯 열리는 입술,
白頭山 天池 (백두산 천지)속에 仙女(신녀)같이 몹시도 어여뻤다.
마을 나무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썼다.
될 수 있으면 장가까지라도--하고
總角(총각)들은 山(산)에 가서 '콩쌀금' 하여서는 남몰래 색시께 갖다주었다.
老人(노인)들은 보리가 슬때 새알이 밭고랑에 있으면 고이고이 갖다주었다.
마을서는 귀여운 색시라고 누구나 稱讚(칭찬)하였다.

  29
가을이 다 가는 어느날 順伊(순이)는
멀구광주리 맥없이 내려놓으며 아버지 보고,
"아버지, 우리를 중놈이라고 해요, 중놈이란 무엇인데"
"중? 중은 웬중! 長衫(장삼) 입고 고깔 쓰고 木鐸 (목탁) 두드리면서

나무아미타불 불러야 중이지, 너 안 보았 니,
日前(일전)에 왔던 동냥벌이 중을"
그러나 어쩐지 그 말소리는 비었다.
"그래도 남들이 중놈이라던데" 하고
아까 山(산)에서 나무꾼들에게 몰리우던 일을 생각하였다.
老人(노인)은 憤(분)한 듯이 낫자루를 휙 집어뿌리며,
"중이면 어때? 중은 사람이 아니라던? 다른 百姓(백성)하고 婚事(혼사)도 못하고

마음대로 옮겨살지도 못하고 "
하며 입을 다물었다가
"잘들 한다. 어디 봐! 내 딸에게 손가락 하나 대게 하는가고"
하면서 말없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에는 눈물이 주루루 어울리고,
順伊(순이)도 그저 슬픈 것 같아서 함께 울었다. 얼마를,

  30
在家僧(재가승)이란 그 由來(유래)는
咸鏡道(함경도)에 尹瓘(윤관)이 들어오기 前(전)
北關(북관)의 六鎭(육진)벌을 遊牧(유목)하고 다니던 族(족)이 있었다.
갑옷 입고 풀투구 쓰고 돌로 깎은 도끼를 메고
해 잘드는 陽地(양지)볕을 따라 노루와 사슴같이 하면서
東(동)으로 西(서)에 푸른 하늘 아래를
水草(수초)를 따라 아무데나 다녔다. 이리저리.
婦人(부인)들은
해뜨면 天幕(초막) 밖에 기어나와,
山(산)과일을 따 먹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저녁이면 고기를 끓이며 술을 만들어,
사내와 같이 먹으며 입맞추며 놀며 지냈다.
그러다가 靑山(청산)을 두고 구름만 가는 아침이면
山嶺(산령)에 올라 꽃도 따고, 풀도 꺾고

  31
말은 한가히 풀을 뜯고 개는 꿩을 따르고,
하늘은 맑았고, 푸르고
이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이 一族(일족)이
잡아서 먹고서, 먹고서 잡아가지고
그래서 술을 먹고 계집질을 하고 兒孩(아해)를 낳고, 싸움하고, 領地(영지)를 빼앗고,

暗殺(암살)이 일어나고
酋長(추장), 武士(무사), 妻(처), 母(모), 兒孩(아해), 石斧(석부), 草衣(초의)
이것이 서로 죽고, 빼앗고 없어지고 하는 對象(대상)
平和(평화)스럽고도 殺伐(살벌)한 世代(세대)를 오래 보내었다.

  32
새벽이면 酋長(추장)이
"애들 일어나거라!" 하는 소리에
天幕(천막) 속 한 자리에서 잠자던 夫婦(부부)와 父母(부모)와 妻子(처자)와 모든 것을
이 이슬을 툭툭 털고 일어나서,
壯丁(장정)은 활을 메고 들에 나가고
處女(처녀)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쪼인다.
酋長(추장)은 연해 싸움할 계획을 하고서--
一族(일족)은 複雜(복잡)한 것을 모르고 그날 그날을 보내었다.

  33
그네들은 탐탐한 空氣(공기)를 모르고 성가신 道德(도덕)과 禮儀(예의)를 모르고

아름다운 말씨와 表情(표정)을 몰랐었다.
그저 아름다운 색시를 만나면 아내를 삼고
그래서 어여쁜 子女(자녀)를 낳아 기르고
밤이면, 달이 떠 寂寥(적료)할 때,
모닥불 옆에서 고기를 구어서는
술안주 하여 먹으며, 타령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즐겁게 보내었다.
몇 百年(백년)을 두고 똑같이

  34
그러나 일이 났다.
앞마을에 고구려 군사가 쳐들어왔다고 떠들 때,
天幕(천막)마다 여러 곳에서 나많은 壯丁(장정)들이 모조리
石斧(석부)를 차고 활을 메고
여러 代(대) 누려먹던 제 땅을 한 뺏기려,
싸움터로 나갔다.
나갈 때엔 울며불며 매여달리는 아내를 물리치면서
처음으로 大義(대의)를 위한 눈물을 흘려보면서,
남은 食口(식구)들은 떠난 날부터
냇가에 七星壇(칠성단)을 묻고 밤마다 빌었다. 하늘에
無事(무사)히 살아오라고! 싸움에 이기라고!
그러나 그 이듬해 가을엔 슬픈 奇別(기별)이 왔었다.
싸움에 나갔던 군사는 모조리 敗(패)해서 모두는 죽고 더러는 江(강)을
건너 오랑캐령으로 달아나고,
---사랑하던 女子와 말과 石斧(석부)와, 石銅簫(석퉁소)를 내버리고서,

卽時(즉시) 고구려 관원들이 왔었다. 이 天幕村(천막촌)에
그래서 죽이리 살리리 공론하다가
종으로 쓰기로 하고 그대로 六鎭(육진)에 살게 하였다.
모두 머리를 깎이고

  35
몇 百年(백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구려 관원들도 갈리고
그 一族(일족)도 이리저리 흩어져
어떻게 두루 複雜(복잡)하여질 때,
그네는 或(혹) 둘도, 모여서 一定(일정)한 部落(부락)을 짓고 살았다.
머리를 깎고 동무를 표하느라고 남들은
집중이라 부르든 말던
在家僧(재가승)이란 그 女眞(여진)의 遺族(귀족)

그래서 白丁(백정)들이 人間禮讚(인간예찬)하듯이
이 一族(일족)은 世上(세상)을 그리워하며 怨望(원망)하며 지냈다.

順伊(순이)란 咸鏡道(함경도)의 邊境(변경)에 뿌리운 在家僧(재가승)의 따님
불쌍하게 피어난 運命(운명)의 꽃.
놀아도 집중과 시집가도 집중이라는 定則(정칙)받은 者(자)!
그러나 누구나 이 뜻을 모른다. 집중이란 뜻을
그저 집중집중 하고 辱(욕)하는 말로 나무꾼들이 써왔다.

  36
마을 색시들은
해 지기까지 하여서 물터에 물 길러 나섰다.
國師堂(국사당) 있는 조그마한 샘터에로
그 곳에는 수양버들 아래
오래 묵은 돌부처 九月(구월) 볕에 땀을 씻으면서 六甲을 외우고 앉아 있었다.
지나던 길손이 낮잠 자는 터전도 되고
그 아래는 바로 우물, 나무꾼들이 발 씻는 우물, 왕벌이 빠지는 우물,

여러 길에 쓰는 샘물터가 있었다.
또 그 곁에는 致齋(치재) 붙이던 베 조각이 드리웠고
나무꾼이 원두 씨름하여 먹고 간 꺼--먼 자취가 남았고
샘물 위엔 벌레 먹은 버들잎 두어 개 띄웠고--

  37
"순이는 벌써 머리를 얹었다네
으아, 우습다. 시집간다더라.
청혼왔다구."
"부자집 며느리 된다고, 어떤 애는 좋겠다."
하며 여럿은 순이를 놀려대이며
버들잎을 가려 가며 물을 퍼 담았다.
"밭도 두 맥 소쉬 있고, 소도 세 마리나 있고 흥!"
"더구나 새 신랑은 글을 안다더라, 언문을."
"또 인물도 얌전하고 벌이도 잘하고"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며
마을 處女(처녀)들은 순이를 놀려대었다.

  38
순이는 혼자 속으로
가만히 "시집" "신부"하고 불러 보았다.
어여쁜 이름이다. 함에 저절로 낯이 붉어진다.
"나도 그렇게 된담! 더구나 그 선비하고."
그러다가 문득 아까 아버지 하던 말을 생각하고
나는 집중, 집중으로 시집가야 되는 몸이라 함에
제 신세 가엾은 것 같애서 퍽 슬펐다.
"어찌 그 선비는 집중이 아닌고? 언문 아는 선비가, 에그
그 부자집은 집중 가문이 아닌고? 가엾어라."
그는 그저 울고 싶었다. 가슴이 답답하여지면서
멀리 해는 산마루를 넘고요--

  39
얼마나 있었는지 멀리 防築(방축) 건너로
"노자--노자 젊어 노자 늙어……." 하는 나무꾼의 牧歌(목가)가 들릴 때
순이는 깜짝 놀라 얼른 물동이에 물을 퍼 담았다.
가을 바람이 버들잎 한 쌍을 물동이에 쥐어 넣고--

  40
동무들은 다 가고
범나비 저녁 바람 쏘이려 나왔을 때
하늘이 부르는 저녁 노래가 고요히 떠돌아
향기로운 땅의 냄새에 어울려
순이를 때릴 때, 그는 저절로 가슴이 뛰었다.---
성장한 처녀의 가슴에 인생의 노래가 떠돌아 못 견디게 기뻤다. 그 때
어디서 갈잎이 째지며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새알만한 돌멩이 발충에 와 떨어진다.

  41
순이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모로 돌아섰다.
귀볼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소년은 뛰어나왔다. 갈 밖으로 벙글벙글 웃으면서
"응, 순이로구나!" 하면서 앞에 와 마주 섰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콩쌀금을 내어 슬며시 쥐어 준다.
순이는 오늘따라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였다. 늘 하던 해죽 웃기를 잊고--

"너 멀구밭으로 갔던? 어째 혼자 갔니?"
"나허구 같이 가자구 하지 않았니? 누가 꼬이던?"
"……."

"어째 너 나를 싫어하니? 응."
순이는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소년은 빨개진 소녀의
귀볼을 들여다 보며
"왜 울었니? 누구에 맞았니?"
"누가 맞았다니?"
"그럼, 어째 말을 아니 하니?"
그래도 순이는 잠잠하다.
소년은 손뼉을 치며 하하하 웃으면서
"옳지 알았다. 너 부끄러워 우니? 우리 아버지 너 집으로 혼사말 갔다더니

옳지 그게 부끄러워 우냐!"
"……."
"얘, 너는 우리 집에 시집온단다. 勸馬聲(권마성) 소리에, 가마에 앉아서 응"
순이는 한 걸음 물러서며
"듣기 싫다. 나는 그런 소리 듣기 싫다."
그리고는 물동이 앞에 와 선다.
아무 말도 없이 고요히 水精(수정)같이
소년은 웃다가 이 눈치를 차리고 얼른 달려들어 동이를 이워 주었다.
그리고는 뒷 맵시와 붉으레한 뺨빛을
또 한 가지, 여왕같이 걸어가는 거룩한 그 姿態(자태)를 탐내 보면서
마치 圓光(원광) 두른 聖女(성녀)를 보내는 듯이 한갖 아까와서

  42
조선의 시골에는
白日(백일)에 짓는 사랑의 궁전은 없으랴.
종이 무서워 무서워 상전을 바라보듯
거지가 금덩이 안아 보듯
두려움과 驚異(경이)가 큐피트의 화살이 되었다.

  43
그러는 속에도 사랑은 虛火(허화)
봄눈을 뒤지고 나오는 움같이 고려 지방족의 强得(강득)한 씨는
아침 저녁 호풍이 부는 山國(산국)에도 피기 始作(시작)하였다.
女性(여성)은 太陽(태양)이다! 하는 소리가 少年(소녀)의 입술을 가끔 스쳤다.
두 절대한 親和力(친화력)에 불타지면서
사랑은 在家僧(재가승)과 諺文(언문) 아는 階級(계급)을 초월하여서 붙었다.

  44
그 뒤로부터
비 오는 아침이나 바람 부는 저녁이나
두 그림자는 늘 샘터에 모였다. 남의 눈을 꺼리면서
물 위엔 갈잎, 마음 속엔 '잊지 말란 풀'

  45
뻐꾸기 우는 깊은 밤중에
처녀의 짓두그릇엔 웬 총각의 토수목 끼었고
누가 쓴 '언문본'인지 뎅굴뎅굴 굴렀다.
순이의 맘에는 알 수 없는 領主(영주)가 들어앉았다.
콩쌀금 주던 미소년이 처녀의 가슴에 아아, 언문 아는 선비가 안기었다.

  46
소년은---
날마다 꼴단 지고 오다가 그 집앞 돌각담 위에 와 앉았다.
땀 씻을 때에 부르는 휘파람소리는
어린 소녀에게 전하는 그 소리라.

사랑하는 이에 사랑 받으면서
꿈나라의 王宮(왕궁)을 짓는 하루 이틀
아침은 저녁이 멀고 저녁은 아침이 그리운
萬里長城(만리장성)을 쌓을 때---

  47
쌓기는 왕자, 왕녀의 사랑 같은 사랑의 성을
두 소년이 쌓았건만
헐기는 재가승의 定則(정칙)이 헐기 시작하였다.
꽃에는 벌레가 들기 쉽다고
아, 둘 사이에는 마지막 날이 왔다.
벌써부터 와야 할 마지막 날이
전통은--- 사회 제도는
인간 불평등의 한 따님이라고
재가승의 자녀는 재가승의 집으로
그래서 같은 씨를 십 대 백 대 천 대를
순이도 재가승의 씨를 받아 전하는 기계로 가게 되었다.

죽기를 한하는 순이는
울고 떼쓰다가 아버지 絞殺(교살)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그 해 겨울에 동리 尊位(추위) 집에 시집갔었다.
언문 아는 선비를 내어 버리고---.

여러 마을의 총각들은 너무 분해서
"어디 봐라!"하고 침을 배앝으며
물긷기 동무들은
"어찌 저럴까. 언문 아는 선비를 어쩌고. 흐흥, 중은 역시 중이 좋은 게지."하고 비웃었다.

  48
이 소문을 듣고 소년은 밤마다 밤마다 울었다.
그리고 단 한 번만 그 색시를 만나려 애썼다.
狂人(광인)같이 아침 저녁 물방앗간을 뛰다니며
"어찌 갔을까. 어여쁜 순이가
맹세한 순이가 어찌 갔을까?" 하면서.

  49
열흘이 지나도 순이는 그림자도 안 보였다.
그래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이시여! 이게 무슨 짓입니까?
팔목에 안기어 풀싸움하던
단순한 옛날의 기억을 이렇게 깨뜨려 놓습니까?"
"아, 순아, 어디 갔니, 옛날의 애인을 버리고 어디 갔니?
너는 참새처럼 아버지 품안에서 날아 오겠다더니
너는 참새처럼 내 품안에서 날아갔구나.
순아, 너는 물동이 이어 줄 때
언문 아는 집 각시 된다고 자랑하더니만
언문도 내버리고 선비도 없는 어디로 갔니?"

"멀구알 따다 팔아 열녀전을 쌓겠다더니
순아, 열녀전을 버리고 어디 갔니?
부엉이 운다. 부엉새가 운다. 뒷 산곡에서
물레젓기 타령하던 때에 듣던 부엉새가 운다. 아, 순아!"

  50
소년은 너무도 기막혀
새벽에 칠두성을 향하여
"하늘이시여, 칼을 주소서. 세상을 무찌를
순이가 살고 옛날의 샘터가 놓인 이 세상을 무찌를!"

  51
에라, 나 보아라
자유인에 탈이 없는 것이다.
家憲(가헌)이라거나 律法(율법)이라거나
모두 짓밟아라
뜯어 고쳐라. 酋長(추장)이란 녀석이 제 맘대로 꾸며 논 惰性(타성)의 도덕률을
집중을 사람을 만들자.
순이는 아버지의 따님을 만들자.
초인아, 절대한 힘을 빌려라.
이것을 고치게, 아름답게 만들게
불쌍한 눈물을 흘리지 말게.

큐피트의 자나간 뒤는 꿈이 사라지고
박카스의 노래 뒤는 피가 흐르나니.

  52
몇 날을 두고 울던 소년은 열흘이 되자
모든 바람이 다 끊어지고 할 때
산새들도 깃든 야밤중에
보꾸램이 하나 둘러메고 이 마을을 떠났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이 땅을 안 디딜 작정으로---
구름은 벌까, 험하게 분주히 來往(내왕)하는데.

  53
소년이 떠난 뒤
하늘은 이 일을 잊은 듯이
해마다 해마다 풍년을 주었다.
때 맞춰 기름진 비를, 자갈 돌밭에.
출가한 순이의 맘에도 안개비를
농부들은 여전히 호미를 쥐고 밭에 나갔다.
마을 소녀들은 멀구 따러 다니고요
언문 아는 선비 일은 차츰 차츰 잊으면서.

  54
몇 해 안 가서
茂山嶺上(무산영산)엔 火車通(화차통)
검은 문명의 손이 이 마을을 다닥쳐 왔다.
그래서 여러 사람은 田土(전토)를 팔아 가지고 차츰 떠났다.
혹은 간도로 혹은 서간도로
그리고 아침 나절 짐승 우는 소리 외에도
쇠 찌적 가는 소리 돌 깨는 소리
차츰 요란하여 갔다. 옷 다른 이의 그림자도 붇고.

  55
마을 사람이 거의 떠날 때
출가한 순이도 남편을 따라
이듬 해 여름 강변인 이 마을에 옮겨 왔다.
압지 집도 東江(강동)으로 가고요---

  56
멀구 따는 산곡에는 토지 조사국 技手(기수)가 다니더니
웬 삼각標柱(표주)
가 붓구요
초가집에도 洋(양)납이 오르고---

  57
촌부들이 떠난 지 5년
언문 아는 선비 떠난 지 8년.

이것이 이 문간에서
서로 들추는 아름다운 옛날의 기억
間諜(간첩)이란 放浪者(방랑자)와 密輸出 馬車(밀수출 마부)의 아내되는 순이의
아, 이것은 둘의 옛날의 記憶(기억)이었다.



第三部
  58
---靑年(청년)
너무도 기뻐서
妻女(처녀)를 웃음으로 보며
"오호, 나를 모르세요. 나를요?"
꿈을 꺠고 난 듯이 손길을 들어
"아아, 국사당 물방앗간에서 갈잎으로 머리 얹고
종일 풀싸움하연 그이를---
또 산 밖에서 멀구 광주리 이고 다니던
당신을 그리워 그리워하던
언문 아는 선비야요!"

"在家僧(재가승)이 가지는 迫害(박해)와 侮辱(묘욕)을 같이 하자던
그러면서 소 몰기 牧童(목동)으로 지내자던
한 때는 봄이 온다고 기다리던 내야요."

---妻女(처녀)
"언문 아는 선비? 언문 아는 선비!
이게 꿈인가! 에그, 아! 에그! 이게 꿈인가
어떻게 오셨소, 당신이 어떻게 오셨소
이 추운 밤에 신작로에는 눈이 어지러운데
봄이 와도 가을이 와도, 몇 가을 봄 가고 와도
가신 뒤 자취조차 없던 당신이
이 한밤에 어떻게 어디로 오셨소?
시집간 뒤 열흘만에 떠나더라더니만."

---靑年(청년)
"그렇다오, 나는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에 못 이겨 열흘만에 떠났소
언문도 쓸 데 없고 밭 두렁도 소용 없는 것 보고
가만히 혼자 떠났소
8년 동안---
서울 가서 학교에 다녔소, 머리 깎고.
그래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을 알고
페스탈로치와 루소와 老子(노자)와 莊子(장자)와
모든 것을 알고, 언문 아는 선비가 더 훌륭하게 되었소.
그러다가 고향이 그립고, 당신을 못 잊어 술을 마셨더니
아느 새 나는 人肉(인육)을 탐하는 자가 되었소.
---네로같이 밤낮---
매독, 임질, 주정, 노래, 춤---깡깡이---
내가 눈 깨일 때는
옛날의 肉體(인체)가 없고, 옛날의 精神(정신)이 없고, 아 옛날의 地位(지위)까지."

"나는 산 송장!
오고 갈 데도 없는 산 송장
아, 옛날이 그리워, 옛날이 그리워서 이렇게 찾아 왔소.
다시 아니 오려던 땅을 이렇게 찾아 왔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하, 어떻게 있소. 處女(처녀) 그대로 있소? 남의 妻(처)로 있소! 흥
역시 베를 짜고 있소? 아, 그립던 順伊(순이)여!
나와 같이 가오! 어서 가오!
멀리 멀리 옛날의 꿈으 들추면서 지내요.
아하, 順伊(순이)여!"

---妻女(처녀)
"아니! 아니 나는 못 가오. 어서 가세요.
나는 男便(남편)이 있는 계집.
다른 사내하고 말도 못하는 계집.
조선 여자에 떨어지는 종 같은 팔자를 타고 난 자이요.
아버지 품으로 門閥(문벌) 있는 집에---
벌써 어머니질까지 하는---

오늘 저녁에 남편은
이것들을 살리려
소금실이 수레를 끌고 강 넘어 갔어요.
남편도 없는 이 한밤에 外人(외인)하고,
에그, 어서 가세요---"

"내가 언제 저 갈 데를 간다고?
백두산 위의 흰 눈이 없어질 때
해가 서쪽으로 뜰 때, 그 때랍니다.
봄날에 강물이 풀리듯이요---"

"타박타박 처녀의 가슴을 디디고 가던 옛날의 당신은
눈물로 장사지내구요.
어서 가요, 어서 가요, 마을 구장에게 들키면
鄕徒 批杖(향도 비장)을 맞을 터인데."
그러면서 문을 닫는다. 애욕의 눈물을 씻으면서---

---靑年(청년)
"아니, 아니 닫지를 마세요.
사랑의 聖殿門(성전문)을 닫지를 마세요.
남에게 奴隸(노예)라도 내게는 帝王(제왕)
종이 上典(상전) 같은 힘을 길러 탈을 벗으려면
그는 일평생 종으로 지낸다구요.
아, 그리운 옛날의 색시여!"

"나는 커졌소. 8년을 자랐소.
屈强(굴강)한 힘은 옛날을 復讐(복수)하기에 넉넉하오.
律法(율법)도 막을 수 있고 魂(혼)도 自由(자유)로 낼 수 있소.
아, 예쁜 색시여, 나를 믿어 주구려
옛날의 백분의 일만이라도."

"나는 벌써 都市(도시)의 煤煙(매연)에서 死刑(사형)을 받은 자이오.
文明(문명)에서 歡樂(환락)에서 追放(추방)되고요.
쇠망치, 機械, 足枷, 飢餓, 凍死(기계, 족가, 기아, 동사)
人血(인혈)을, 人肉(인육)을 마시는 곳에서 이 遊離(유리)하는 空氣(공기) 속에서
겨우 逃亡(도망)하여 온 자이오.
沒落(몰락)하게 된 文明(문명)에서
日光(일광)을 얻으려 空氣(공기)를 얻으려
그리고 賣春婦(매춘부)의 腐爛(부란)한 고기에서, 阿片(아편)에서, 빨간 술에서,

名譽(명예)에서, 利慾(이욕)에서
겨우 빠져 나왔소.
옛날의 豆滿江(두만강) 가이 그리워서
당신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당신이 죽었더라면 한평생 무덤 가를 지키구요
시집가신 채라면
젖가슴을 꿈으로나 만지려고
풀밭에서 옛날에 부르던 노래나 찾으려고---."

---妻女(처녀)
"무얼, 또 꾸며대시네
며칠 안 가서 그리워하실 텐데!"

---靑年(청년)
"무엇을요? 내가 그리워한다고."

---妻女(처녀)
"그러문요! 都會(도회)에는 어여쁜 색시 있고, 놀음이 있고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것도
날마다 밤마다 퍼붓는 함박눈밖에
강물은 얼고요, 사람도 얼고요
해는 눈 속에서 깼다가 눈 속에 잠들고
사람은 추운 데 낳다가 추운 데 묻히고
서울서 온 손님은 마음이 여리다구요.
오늘 밤같이 北風(북풍)에 우는 당나귀 소리 듣고는
눈물을 아니 흘릴까요?
여름에는 소몰기, 겨울에는 마차몰이, 그도 密輸入 馬車(밀수입 차부)랍니다.
들키면 경치우는---
單調(단조)하고 無味(무미)스러운 이 살림
몇 날이 안 가서 싫증이 나실 텐데---."

"시골엔 文明을 모르는 사람만이
언문도 孟子(맹자)도 모르는 사람만이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사람만이
소문만 외우며 사는 곳이랍니다.

---靑年(청년)
아니 그렇지 않소
내가 都會(도회)를 그리워 한다고?
비린내나는 그 都會(도회)에를
友情(우정)을 度量衡(도량형)으로 싸고요.
名譽(명예)라는 수레를 一生(일생) 두고 끄으는
소와 막잡이하는 愚鈍(우순)한 車夫(차부)들이 사는 곳을."

"굴뚝이 勞動者(노동자)의 肉盤(육반) 위에 서고
豪奢(호사)가 剩餘價値(잉여가치)의 종노릇하는
모든 魂情(혼정)이 傳統(전통)과 因襲(인습)에 눌리어
모든 桎梏 (질곡)밖에 살 집이 없는
그런 都會(도회)에, 都會人(도회인) 속에"

"데카당·다다·厭世·惡(염세.악)의 讚美(찬미)
豆滿江(두만강) 가의 자락돌같이
무수히 있는 近代(근대)의
의붓자식 같은 朝鮮(조선)의 心臟(심장)을 찾아가라고요!
아, 田園아, 愛人아, 遊牧業(유목업)아!
國家(국가)와 禮式(예식)과 歷史(역사)를 벗고 빨간 몸뚱이
네 품에 안기려는 것을 막으려느냐?"

그러면서 靑年(청년)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든 絶望 (절망)끝에 찾는 것 있는 듯이
하늘엔 언제 내릴는지 모르는 구름기둥이
조그마한 별을 디디고 지나간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새벽이 걸어오듯
8년만에 온 靑年의 눈 앞에는
활을 메고 노루잡이 다닐 때
밤이 늦어 모닥불 피워 놓고
고기를 까슬며,
색시 어깨를 짚고 노래 부르던 옛 일이 생각난다.

毒(독)한 물지 담배 속에
"옛날에 南怡 將軍(남이 장군)이란 녀석이……."
하고 老農(노농)의 이야기 듣던
마을 總角(총각) 떼의 모양이 보인다.
앗! 하고 그는 다시금 눈을 돌린다.

---妻女(처녀)
"그래도 싫어요. 나는
당신같은 이는 싫어요.
다른 계집을 알고 또 돈을 알고요.
더구나 일본말까지 아니
와 보시구려. 오는 날부터 巡査(순사)가 뒤따라 다닐 터인데
그러니 더욱 싫어요. 벌써 間諜(간첩)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내가 미나리 캐러 다닐 때
당신은 뿌리도 안 덜어 줄 걸요.
白銀(백은) 길 같은 손길에 흙이 묻는다고
더구나 감자국에 귀밀밥을 먹는다면---"

"에그 애닯아라.
당신은 亦是(역시) 꿈에 볼 사람이랍니다. 어서 가세요."

---靑年(청년)
"그렇지 않다는데도
에익, 어찌 더러운 팔자를 가지고 낫담!"
그러면서 그는 焦燥(초조)하여 손길을 마주 쥔다.
끝없는 새벽 하늘에는
별싸락이 떴고요---

그 별을 따라 그치는 곳에
北極(북극)이, 눈에 가리운 北極(북극)이 보이고요.
거기에 氷山(영산)을 마주쳐 두 손길 잡고 고요히
저녁 祈禱(기도)를 드리는 孤兒(고아)의 모양이 보인다.
그 소리 마치
"하늘이시여, 용서하소서 죄를. 저희들은 모르고 지었으니."하는 듯.

별빛이 끊기는 곳, 마지막 벌판에는
이스라엘 建國(건국)하던 모세와 같이
人民(인민)을 殘酷(잔혹)한 壓迫(압박)에서 건져 주려고
무리의 앞에 횃불을 들고 나아가는
超人(초인)의 모양이 보이고요
오, 큰 바람이여, 魂(혼)의 受難(수난)이요, 交錯(교착)이여!

"버린다면 나는 죽어요
죽을 자리도 없이 故鄕(고향)을 찾은 落人(낙인)이예요.
아, 褓母(보모)여, 젖먹이 어린애를
그대로 모른다 합니까."
그의 두 눈에선 눈물이 두르르 흘렀다.

---妻女(처녀)
"가요, 가요, 인제는 첫닭 울기,
男便(남편)이 돌아올 때인데
나는 매인 몸, 옛날을 꿈이랍니다!"
그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애처로운 옛날의 따스하던 愛慾(애욕)에 끌리면서.

그 서슬에 靑年(청년)은 넘어지면서
낯빛이 새파래진다. 몹시 痙攣(경련)하면서
"아, 잠깐만 잠깐만"
하며 닫아 맨 문살을 뜯는다.

그러나 그것은 監獄所 鐵扉(감옥소 철비)와 같이 굳어졌다.
옛날의 사랑을, 太陽(태양)을, 田園(전원)을 잠가 둔
聖堂(성당)을 좀처럼 열어 놓지 않았다.
"아, 여보 順伊! 在家僧(순이! 재가승)의 따님
당신이 없다면 8년 후도 없고요, 세상도 없고요."

---妻女(처녀)
"어서 가세요. 동이 트면 男便(남편)을 맞을 텐데."

---靑年(청년)
"꼭 가야 할까요
그러면 언제나?"

---妻女(처녀)
"죽어서 무덤에 가면!"
하고 차디차게 말한다.

---靑年(청년)
"아, 아하 아하……."

---妻女(처녀)
"지금도 男便(남편)의 가슴에 묻힌 산 송장
흙으로 돌아간대도 家山(가산)에 묻히는 송장
在家僧(재가승)의 따님은 워낙 송장이랍니다!"

---여보시오. 그러면 나는 어쩌고?
---가요, 가요. 어서 가요, 가요.
뒤에는 반복되어 이 소음만 요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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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끄 때였다.
저리로 웬 발자취소리 요란히 들리었다.
아주 急(급)하게---아주 惶怯(황겁)하게
처녀와 청년은 놀라, 하던 말을 뚝 그치고
발자취 나는 곳을 向(향)하여 보았다.
새벽이 가까운지 바람은 더 甚(심)하다.
나뭇가지엔 눈덮였다, 눈더미가
둘의 귀볼을 탁 치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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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의 임자는 나타났다.
그는 어떤 屈强(굴강)한 남자이었다.
가슴엔 무엇을 안은---
처녀는 반가이 내다르며
"에그, 인제 오시네!"하고 안을 듯한다.
청년은 "이것이 남편인가."함에 한껏 憤(분)하였다.
가슴에는 때 아닌 모닥불길.
"어찌 혼자 오셨소? 우리 집에선?"
처녀의 묻는 말에 車夫(그는 같이 갔던 車夫였다.)는 얼굴을 숙인다.
"네? 어찌 혼자 오셨소. 네?"
그 때 장정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만히 보꾸러미를 가리킨다.
처녀는 무엇을 깨달은 듯이
"이게 무언데?"하고 몸을 떤다. 어떤 豫感(예감)에 눌리면서.

  61
처녀는 하들하들 떠는 손으로 가리운 헝겊을 벗겼다.
거기에는 선지피에 어리운 송장 하나 누웠다.
"앗!"하고 처녀는 그만 쓰러진다.
옳소, 馬賊(마적)에게 쏘였소. 건너 마을에서, 에그"하면서 車夫(차부)도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다.
白金 (백금)같은 달빛이 三十壯男(삼십장남)인
馬賊(마적)에게 銃 (총)맞은 순이 사내 송장을 비쳤다.
天地는 다 죽은 듯 고요하였다.

  62
"그러면 끝내---에그 오랬던가."
아까 총소리, 그 마적놈, 에그 하나님 맙소서!
강녘에선 또 얼음장이 깔린다.
밤새 길게 우는 세 사람의 눈물을 얼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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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해는 재듯이 떠, 뫼고, 들이고, 초가고, 깡그리 기어 오를 때
멀리 바람은
간도 이사꾼의 옷자락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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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서는 그 때
굵은 칡베 長衫(장삼)에 묶인 송장 하나가
여러 사람의 어깨에 메이어 나갔다.
눈에 덮이 山谷으로 첫눈을 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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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은 어는 남녘진 陽地(양지)쪽에 내려 놓았다.
빤들빤들 눈에 다져진 곳이 그의 墓地(묘지)이었다.
"내가 이 사람 墓地(묘지)를 팔 줄 몰랐어!"
하고 老人이 괭이를 멈추며 땀을 씻는다.
"이 사람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네!"하고
젊은 車夫(차부)가 뒤대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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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괭이와 삽날이 달가닥거리는 속에
거어먼 흙은 흰 눈 위에 무덤을 일궜다.
그 때사 구장도 오고, 다른 차꾼들도, 청년도
여럿은 묵묵히 서서 서글픈 이 일을 始作(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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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冬(삼동)에 묻히운 丙南(병남)의 송장은
쫓겨 가는 자의 마지막을 보여 주었다.
아내는, 順伊(순이)는 手巾(수건)으로 눈물을 씻으며,
"밤마다 춥다고 동나무를 짚히우라더니
추운 곳으로도 가시네
이런 곳 가시길래 구장의 말도 안 듣고---."

  68
여러 사람은 여기에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속으로
"흥! 언제 우리도 이 꼴이 된담!"
애처롭게 앞서 가는 동무를 弔喪(조상)할 뿐.

  69
얼마를 상여꾼들이
땀을 흘리며 흙을 뒤지더니
삽날소리 딸가닥 날 때
노루잡이 陷穽(함정)만한 長方形(장방형) 구덩 하나가 생겼다.

  70
여러 사람들은 고요히
동무의 屍體(시체)를 갖다 묻었다.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71
거의 묻힐 때 죽은 丙南(병남)이 글 배우던 書堂(서당)집 老訓長(노훈장)이
"그래도 朝鮮 (조선)땅에 묻히다!"하고 한숨을 휘이 쉰다.
여러 사람은 또 孟子(맹자)니 通鑑(통감)을 읽는가고 멍멍하였다.
靑年은 골을 돌리며
"煙氣(연기)를 피하여 간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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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저쪽으로 점심 때라고
中國 軍營(중국군영)에서 나팔 소리 또따따 하고 울려 들린다.

 

김동환(金東煥, 일본식 이름: 白山靑樹 시라야마 아오키,

1901년 99월21~ 1958년?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수송동(현 경성군 승암노동자구)에서

아버지 김석구(金錫龜)와 어머니 마윤옥(馬允玉)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아호는 파인(巴人)이다.

1916년 경성부로 이주하여 중동 중학교에 입학했으며 1921년 3월 졸업하였다.

곧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토요대학 영어 영문문학과에 입학하여 재학하던 중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인의 조선인 혐오로 인한

관동대학살및 수용소 수감을 피해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했다.

 

함북에서 발행된 《북선일일보》를 비롯하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 발표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가 본격적인 등단작이다.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1925)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적 특색으로는 국경 지대인 고향에서 얻은 북방적 정서와 강한 낭만성,

향토적인 느낌을 주는 민요풍의 언어를 들 수 있다.

1929년 종합월간지 《삼천리》와 문학지 《삼천리문학》을 창간해 운영했는데,

일제 강점기 말기에 삼천리사를 배경으로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위한 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

1944년 7월까지 김동환의 잡지 발행 및 출판은 지속되었다.

8.15 광복 후 김동환은 조선문단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지목되어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는데, 이때 특기할 만한 점은,

그가 1948년 9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자

스스로 친일 행위 사실을 인정하고 자수했다고 한다.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문단의 선배들이 치졸한 변명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높게 살 만하다.

또 해방 후 <꽃피는 한반도>라는 책에서 '반역의 죄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친일에 대해 사죄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1949년 8월 반민족행위자처벌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 직후인 7월 23일 납북되었으며

1956년 납북인사들로 구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에 위임되었다가

1958년 노동자수용소로 추방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